숙아 !
널 이렇게 불러본 적이 정녕 언제였던가.. 이제 아득하니 그 때로 돌아가서, 정녕 돌아갈 순 없겠지만,, 난 네게 긴 회한의 글을 쓰련다. 만나서 함께 마주보며 다정 다감하게 속삭이고 싶지만, 우린 그렇게 자연스레 만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니.. 이 글을 통해서나마 그 동안 너 없이 살아온 내 삶, 지금의 내 감정 모두 다 털어 놓으련다
네가 죽음의 병과 싸웠다는 말을 할 때, 네게서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그 때 내 심정이 어땠는지 아니? 대체 그 순간에 난 어디에 있었을까? 네가 죽음과 맞서고 있을 때, 난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만약 그 때 네가 죽었다면; 난 아마도 고목처럼 말라 비틀어져서 그렇게, 그렇게 죽어 갔으리라.. 내 얘기를 마치면; 네 얘기도 듣고싶다.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네게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또 지금은 어떠한지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알고 싶다..
넌 날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다고? 난 단 한시도 널 생각하지 않았단다. Jw가 별안간 차 방향을 돌려 ㅇㅇ으로 데려갈 때에도, ㅇㅇ에 도착해서도,, 난 네가 그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던 사실인데도..)기억해내지 못했단다. Jw가 네 이름을 말할 때야, 그때서야 비로소 난 네가 그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지. 거짓말 같지만, 사실인걸.. 이것이 내 삶의 진실이다, 난 널 잊었었다.. Jw가 너라고 전화를 바꿔줄 때, 곧바로 들려오던 말: "오지 마!", 잠시 후.. 바로 들려오던 말: "빨리 와!!"
넌 내가 너에 대한 미련 때문에 아직 결혼을 안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결혼하라고 그런 거지? 아냐, 결코 그건 아니야! 정말로 그건 아니란다, 난 불과 2년 전에도 한 아이를 깊이 사랑했었던 걸.. 그녀는 한편으로는 너와 첨 만났을 때처럼, 그렇게 요정처럼 맑디 맑은 어여쁜 소녀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짙고 어두운 그림자를 함께 지닌 아가씨였어(그 이유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비록 짧은 만남이었던 만큼 더 이상 내게 깊은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했었던 걸.
널 처음 만났을 때(28청춘, 16살 때네 ㅎ), 난 네게 이런 글을 보낸 적이 있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네 생각을 했는데 가슴이 울렁거리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을 느꼈다고, 멀미를 하는 걸로 생각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더라고. 요 놈의 정체를 최근 과학자들이 밝혀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 그게 뭔고 하니, 남녀간에 깊이 호감을 갖게 되면 몸에서 특별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것은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정도 간다는 거야. 결론은, 이것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면; 시쳇말로, 사랑이 식는다는 거지 뭐. 그래서 외도도 하고 한다는 거지. 하지만, 이 냉철한 과학자들의 위대한 발견에 반하게도, 널 처음 만나 갖게 된 내 감정의 호르몬은 지금까지 조금도 줄어들지도 약해지지도 않았는데.. 이 멍청한 과학자들은 아마도 1년 내지 3년간만 사랑하고 끝내는 바람둥이들이었나 봐 ^^
실은, 난 네게서 처음으로 느꼈던 그런 사랑의 감정을 22살짜리 어린 아가씨한테서 다시 찾았었단다. 널 처음 만났을 때처럼, 꼭 그 때처럼 그렇게 시도 써지고 가슴이 울렁이고, 서러운 눈물도 나오고.. 했었단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단다. 잘 되었다면; 난 아마도 지금쯤은 결혼했을 지도 모르는데, 어찌 너 때문에 내가 결혼하지 않은 것이겠냐? 절대 그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으면 좋겠다.
난 과거를 먹고 살기는 싫다! 지금까지의 내 삶에 있어서 과거를 붙잡고자 했던 경우는, 내가 기억하는 한은, 너 때문에 눈물 흘리던 그 시절 뿐이었다. ..하지만, 이건 비밀인데, 네게서 처음 느꼈던, 그리고 그 꼬마 아가씨에게서 다시 확인한 바로 그 사랑의 감정이 지금 내 가슴 속에서 재차 살아나고 있다면? 너로 인해 처음 알게 되고 또한 너로 인해 오랜 세월 깊이 파묻어 두었던 그 감정을, 이제 와서 다시 너로 인해 느끼고 있는데.. 숙아, 나 어떡해? 나 어쩌면 좋지? 하지만 괜찮아. 난 사랑을 망각하는 방법도 또한 잘 알고 있는걸.
실은 나, 널 만나 새벽까지 같이 술만 마시고(니가 눈물을 흘리기에, 너 왜 우냐? 하고 물었는데..), 여기로 올라온 그 날부터 난 꼬박 닷새 동안 이유없이 울었단다(나는 또, 왜 우냐?). 월요일 오전에 사무실에 들어와서 밥을 해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그만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리잖아. 그 날부터 금요일 밤까지 낮이고 밤이고 계속 눈물만 뚝뚝 흘렸어. 물과 커피 외에는 아무 것도 안 먹으면서 계속 울었어(실은 술도 좀 먹었어). 금요일 밤이 되어서야 다시 한참 식어버린 밥으로 끼니를 했어(실은 월요일 날 먹고 남긴 누룽지야). 이제는 괞찮은 것 같아. 널 억지로 내 기억에서 밀쳐내야 했던 그 긴 나날의 한이 닷새간의 눈물만으로 다 씻겨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제 많이 좋아진 것 같아(그래서 네게 이렇게 글도 쓰고 있잖아).
12살짜리 딸이 있다고 했지? 널 닮았다면 아주 예쁘고 총명한 아가씨일거야. 언제 기회가 닿는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 내가 좀 여유가 생기면 컴퓨터 한 대 만들어서 가지고 갈 테니까 그 때 네 귀여운 꼬마 아가씨 소개 시켜줘. 몇 시간 정도 컴퓨터 가르쳐주다 보면 금새 친해질걸? 아마도 널 꼭 빼닮은 예쁜 아이겠지?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 내게도 꼭 그만큼 소중하단다. 네 가족들에 대해서도 요모조모 다 알고 싶다.
내게도 사랑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꼬마 아가씨가 있어.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이던가? 머리는 큰 아빠보다 훨씬 좋다고들 그래(실제로 그래). 예쁘기로는 나중에 미스 코리아도 될 수 있을 것 같고(정말로 말야),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바로 그룹을 하나 만들어서 가수로 나가겠다는 꿈을 품고 있는 말괄량이 아가씨야(이 꿈을 처음 품은 때가 서너 살 때였으니 참 맹랑하지?)
돌 때 이 아이를 보고 곧바로 헤어져서 1년간 서로 연락이 끊겼었는데, 누군가에게서 동생이 울산으로 이사 와서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 갔는데, 이 애 혼자 자고 있다가 깨어나더니 내 얼굴을 기억하고선 뭐라 그러는지 아니? “큰 아빠, 귤하고 고기빵[붕어빵 ㅎ] 왜 사왔어? 돈도 없으면서..” 그 날이 바로 이 애 2번째 생일날이었어. 언젠가 얘가 묻는 말이, “큰 아빠하고 결혼하려면 큰 아빠가 더 작아져야 돼?” 그러면서 빨리 작아지라던 이 귀여운 아이를 근 4, 5년간 보지 못했어. 언제나 보고 싶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했어. 왜 난 항상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서 지내게 되지? 무슨 악귀가 씌었을까?
너와의 모든 인연이 끊어진 채 살아온 그 숱한 사연의 나날들, 난 참 힘들게도 살았단다. 비록 실연의 아픔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어떻게? 그냥, 무작정 다 지워 버렸으니까!), 생활은 몹시 어려웠어. 부천에서, 춘천에서, 대전에서, 울산에서, 서울에서, 성남에서, 다시 울산으로 거쳐간 긴 나날들 속에서 월급이라고 받아본 것은 채 6개월도 안되었으니.. 아침이면; 오늘은 어디 가서 밥 한끼 얻어먹나 따져보고, 밤이 되면; 오늘은 또 어디 가서 하루를 지새우나 고민하던 나날들.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안기부에 끌려가지나 않을까 두려움에 떨던 나날들. 그런 고되고 힘든 나날들 속에서 난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법을 터득했고, 며칠씩 먹지 않고 자지 않으면서 사는 데에도 익숙해졌어.
내 젊은 시절부터 함께 얘기하며 결국은 운동으로 끌어들인 친구가 90년 5월에 신나를 끼얹고 자기 몸을 불살랐을 때, 한 방에서 같이 지냈던 동지가 처자식을 남겨두고 목을 매달았을 때.. 그 때도 난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냉혈한이었다. 어디서 난 그런 면피를 구했을까? 다종다양한 인간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적개심에 불타 날뛰던 난 그저 우물 안 개구리였을 뿐이었단다. 어디서 난 그런 맹목을 배웠을까? 평생을 감방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지레 짐작으로 막무가내로 너와 헤어지자고 해댔던 난 또 얼마나 어리석었던가(그러고서도 감방 구경도 한 번 못했으니 이 또한 얼마나 우습냐)?
하지만, 하지만 숙아, 나도 짧게나마 변명 한마디는 하련다. 난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권력에 의해 자기 땅에서 쫓겨나고, 자본가의 채찍에 신음하던 유신 시대를 살았단다. 80년 광주의 그 핏빛 죽음들이 내 청춘 시절과 정면으로 맞닥뜨렸었단다. 난 내 의지에 맞추어 세상을 바꾸고자 했건만, 그러나 그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을.. 아, 이제 와서 이런 얘기 더 길게 쓴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냐? 다만 하나, 못내 아쉬운 건, 내게 있어 너란 사람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너무 늦게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난 너한테 변덕만 부린 걸, 혼자 잘난 체만 해댄 걸, 그지? 난 왜 그다지도 어리석었을까?
((* 요건, 네게는 비밀이라서 깊숙이 괄호 안에 넣는 건데(그러니, 넌 모르는 거야, 알았지?); 나 실은 예전에 너 원망 많이 했었어. 나 너한테 꼭 한마디만 확인하고 싶었어. 사랑한다는 말, 그 말이 그렇게 듣고 싶었어. 실은, 난 네가 날 사랑하는지 확신이 없었어. 난 알 수가 없었어, 알 수가 없었단 말야! 실제로 넌 단 한 번도, 결코 단 한 번도 내게 사랑한다는 말 하지 않았쟎아. 한 번만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네게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난, 비록 막스주의를 벗어날 수는 없었을지라도, 지하의 운동가는 되지 않았을 거야. 나 그 당시 정말로 매일같이 다짐했거든. 숙에게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만 듣는다면; 그러면 이 사랑스런 여자와 함께 살 수 있는 길로 가겠다고 말야. 그랬더라면 난 아마도 대학 교수나 하면서 온실 속의 사회주의자가 되었겠지.. 하지만 역사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허락ㅎ지 않는 법이니, 그게 다 내 슬픈 운명이었나 보지 뭐))
글로 쓰기에는 너무 힘들고 숱한 사연으로 얼룩진 긴 나날들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기억하기 싫은 그런 나날들이었다. 우리 지난 책장은 이제 그만 덮어 버리자(네 책장은 아직 열지도 않았으니, 다음에 만나면 열어서 보여줘. 그런 뒤에 네 지난 책장도 함께 닫아버리자)
나 이제는 너와 아주 소식이 끊기는 거 싫다(그건 절대로 안돼!). 이제라도 난 언제나 네 그림자를 밟으며 조용히 뒤따라 갈 거야. 네게 일어나는 좋은 일, 나쁜 일 모두 알면서 그렇게 가고 싶다. 괞찮지? 그래, 넌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이고(네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그랬을 거야), 여전히 가장 끌리는 사람이다(여자로서는, 넌 내게 언제나 그렇다). 숙아, 가끔씩이라도 좋으니 내게 연락해 줘. 좋은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나쁜 일이 있으면 또 그런 대로 그렇게 소식 줘. 네가 아플 때 난 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던 건지, 아직도 내 가슴이 저려 오는걸..
하지만, 나 더 이상 너 보지 못한다 해도 한은 없어. 널 다시 본 순간, 바로 그 순간, 내 평생의 쌓인 한이 다 녹아내리는 걸 느꼈거든(그 녹아버린 한이 지난 며칠간 하염없는 눈물로 쏟아져 나왔던가 봐). 널 다시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내 청춘, 내 인생, 내 삶의 모든 것 다 보상 받은 거야. 내 살아있는 동안 다시는 널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실은, 볼 면목이 없었는데), 그래서 아예 내 기억 속에서 네 모든 것을 몰아내 버렸었는데(아니, 그건 아니야! 널 몰아낸 건 아니야, 단지 내 가슴 속 깊숙이 전설처럼 파묻어 두었던 거야)..
그 날 내 가슴이 얼마나 평화로왔는지 넌 상상할 수 없을거야. 널 바라만 보아야 하는 아련한 서러움 속에서도, 내 생애 이렇게 가슴 포근한 날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했었어. 헌데, 막상 여기로 올라오니 또 서러움이 더 커지더라(난 원래 네게는 변덕쟁이였잖아 ^_^). 그래서 한없이, 목놓아 울어버렸지 뭐. 예전에 널 생각할 땐 마치 가슴 속이 요동치는 듯,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 했었는데, 그런 슬픔이고 그런 아픔이었는데, 지금은 널 생각할 때도 포근하고 잔잔한 평화로움이 느껴져. 비록 너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아픔과 서러움도 뜨거운 눈시울로 밀려오긴 하지만.. 내 그런 눈물조차도 이제는 따뜻한 것 같아. 예전엔 내 눈물이 아주 차갑거나 아주 뜨겁거나 했었거든..
숙아! 너 내게 대해 아는 거 있니? 아무 것도 없단다. 난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더 나쁘고(아마 그럴거야), 더 밝고 더 쾌활한 편이야(사실이야). 또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더 멋지고 더 괞찮은 남자일거야(정말 그럴까? 물론이지. 난 지성과 야성, 감성이 가장 이상적으로 조화된 팔등신 남자라는 얘길 듣는걸.. ‘믿거나 말거나’ 코너였습니다 ^^).
사실 너와는 다정하게 얘기 한 번 해본 적 없쟎아, 너와는 항상 냉전이었지. 우리가 팔짱 끼고 다정스레 데이트 한 번 해본 적 있었나? 모두 내가 너무 불안하던 때였기에, 그래서 계속 네게 변덕만 부렸었기에 그렇게 되어 버렸지. 난 언제나 널 울면서 봐야 했으니까, 우린 만난 날보다 헤어진 날이 더 많았으니까, 모두 내가 나빠서였어. 내가 조금만이라도 네 생각을 해줄 수 있었더라면, 내가 조금만이라도 널 진심으로 대했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네게는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모두 내게는 진한 아쉬움이다. 허나,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인걸.
아, 나란 인간은 어찌 그다지도 어리석었을까? 손 안에 들어온 보석을 그렇게 내던지다니.. 난 네게 너무 아무렇게나 대했어. 그러면서도 너만을 사랑했었다고 말하는 난 또 얼마나 가소로운가? 내가 네게 잘못한 것, 다소나마 용서받을 수 있다면 난 무엇이든 할거야. 앞으로 그럴께, 그러고 싶어.
운동을 그만 둔 이후 처음 몇 년간은 죽고 싶었던 때가 많이 있었지. 그 때마다 내 뇌리를 스친 건 내 꼬맹이 아가씨였단다. 큰 아빠를 너무도 좋아하는 그 사랑스러운 아이가 얼마나 슬퍼할까, 그 아이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하는 생각이 나를 지켜내 왔단다. 그래, 우린 그렇게 살아가는 건가 보다. 작은 정에 매이고 그리고 실은 그것이 가장 소중한 것인데, 난 너무도 몰랐었구나. 나도 이제 작은 정 하나 하나를 소중히 하며 그렇게 살아가련다. 사실, 너에게는 내가 가진 정 모두를 쏟아 부어도 용서받기 어렵지만.. 아, 이제 더 이상은 생각하기가 어렵구나(또 다시 슬퍼지려나 봐).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건 내 노파심에서 당부하는 건데, 나보고 결혼하란 말 더 이상 하지 마. 내가 결혼하지 않은 것은 너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야. 너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냐, 절대로 그건 아니야! 2년 전에 만났던 그 친구와 같이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여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결혼할거야(네가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이야). 나 진짜로 그 아이 사랑했거든..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다시 보고싶지도 않고.. (너하고 비교해 보라고? 그건 말도 안돼, 넌 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넌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잖아..)

- 2000.7.19. Kjc

이렇게 참으로 긴 하룻밤이 지나는구나(아마도 내 생애 가장 기나긴 밤이 되리라). 나 이 밤 까맣게 지새우련다. 결코 오지 않는, 결코 오지 않을 네 전화 기다리며.. 그렇게, 이 밤 지새우련다. 네 목소리라도 한 번 들어보고자 건 전화에서 들은 단 한 마디, “내가 전화 할께.. 알았지?” 하는 네 말에 난 그저 ‘응’하는 외마디 울음 밖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단다(그 순간 내 심장은 얼어붙어 버렸는걸, 네 낮은 목소리는 결코 저항할 수 없는 무게로 나를 엄습했던 걸). 그 이후 네 전화를 기다리던 단 몇 시간이 그렇게 길 줄이야, 그 몇 시간의 기다림에 의해 내 모든 것이 다 무너졌단다..
어릴 적 널 처음 만나고, 그리고 헤어지고,, 그런 뒤 너 없이 홀로 걸어온 내 긴 세월. 널 잊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거칠던 삶. 그 모든 것을 단숨에 날려 버린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가슴이 터질 듯 무거운 시간이었다. 널 잊었었다고 생각했는데, 정녕 그렇게 믿어왔는데.. 그래, 모두 환상이었나 보다. 그건 그저 내가 내 자신에게 걸어온 최면이었구나. 그래, 나 너 사랑한다, 단 한 시도 널 사랑하지 않은 적 없다. 숙아, 지금 내 눈에선 마치 폭포수처럼 그렇게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지고 있단다. 속절없이, 속절없이 그렇게 눈물만 쏟아내고 있단다. 그래, 이제 다시는 널 보지 못한다 해도 좋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이지 않으리라. 그래, 널 사랑한다.
숙아, 미안하다. 널 찾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와는 영원한 평행선을 걸었어야 했는데.. 아, 내가 또 잘못한 것 같다. 넌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이도 있는데.. 대체 난 무얼 바라고 널 찾았을까? 괞히 네게 또 다시 부담만 지웠구나. 숙아, 내게 부담 갖지 마. 난 괞찮아. 난 언제나 내 의지로 살아 왔는걸, 세상마저도 내 의지대로 바꾸려고 했던걸.. 이제 와서 뭐가 두렵겠냐?
지금까지는 널 잊었다고 믿으면서 살아왔는데(물론 널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성공적이었는데), 이제 난 다시 한번 긴 시험의 문턱에 들어서게 되겠지? 이제는.. 널 사랑한다는 것을 스스로 분명히 알면서도 너 없이 홀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또 다른 긴 시험을 다시 치러내야 하겠구나, 이제 난 다시 한 번,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정녕 다시 돌아올 기약도 없는 그런 길고도 외로운 여행 길을 떠나야만 하는구나..
이제 정녕 다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게 되겠지? 하지만, 난 괞찮단다. 난 다시 한 번 이 시험을 통과할거야. 그래서 내 여로의 끝에서는, 네가 바라는 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살아가게 되리라.. 언제든 내게 네 근황을 알려다오.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잘 지내는지 어떤지, 전혀 모르면서 그렇게 살아가기는 싫단다. 그것이 내 소박한 소망이다.
네게 힘든 일이 생기면, 네가 어려움을 만나면(항상 네 앞에 행복의 다리만이 놓여지기를 빌고 있지만) 언제든 연락해다오. 난 그저 네 목소리를 한 번 듣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행복하니까, 그렇게 해다오. 아! 언젠가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그 때는 절대로 널 놓치지 않으련만.. 하지만, 내 바램은 결코 인간의 의지가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놓여져 있는 것을. 숙아, 언제나 너만을 사랑했었다..

- 2000. 7.24.밤 K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