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은 신라 초기부터의 궁궐이었다는
(
와
사이에 반달 모양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야산 언덕)의 남쪽에 있는 산 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북쪽의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 두 봉우리 사이를 잇는 산들과 계곡들을 통칭하는데..
산을 돌아가는 도로를 기준으로 크게 [서남산] 지역과 [동남산] 지역으로 나뉩니다
서남산 둘레길
은 남산의 북쪽 시작 지점인 ([도당터널] 옆)올렛길 등산로 입구에서
식혜골 을 거쳐, 혹은 ([오릉] 인근)나정에서 출발하여 [남간사지]로 들른 뒤,
(마을 길이나 농로, 도로를 통해)포석정과 삼릉, 용장 등을 지나치면서
남산의 남쪽 끝자락인 새갓골까지 돌아가는, 서남산 주변을 아우르며 지나가는 길입니다
* cf)[도당터널] 위 [작은 식물원]에는 예쁜 꽃들을 감상할 수 있는 휴식터가 있고,
계속 올라가면(경주시내 방향) 신라시대 최고위 귀족들이 모여 국가대사를 논의한
가 열리던 화백정을 지나서
로 내려가는
가 있는데..
[화백정]에서 앞을 바라보면; 옛 신라의 궁궐터였던 월성 숲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앞으로는
중 하나인 남천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남천의 모래는 너무 고와 물을 거슬러 위로 올라간다고(혹은, 물이 너무 맑아 그렇게 보인다고도) 합니다만,
실제로 그런지는 직접 찾아가서 확인해 보십시오 ^^
기왕지사, [도당터널]을 건너갔다면; 경주를 방문하는 모든 분들이 반드시 찾으시는
도 다 들러 보십시오..
(* 여기서는, [첨성대]만 보여드리니, 다른 곳들은 직접 월성을 찾아가서 거닐어보시기를 권합니다 ㅡㅡ;)
░
여기서 잠시, [도당터널]을 건너 [화백정]으로 가서 [월성 숲]과 [남천], [월정교]와 [교촌마을]을
조망해보기로 합니다
동남산 둘레길
은 최치원이 상서장에서 지내며 공부하던 [고운대] 바위 바로 옆으로 내려가는 좁은 길에서부터
시작하여 옥룡암 및 보리사, 천년숲 정원, 통일전 및 서출지를 거쳐
염불사지에서 끝나는(여기서부터는 칠불암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됨),
동남산 주변 전체를 아우르며 지나가는 길입니다
* cf)
신라의 대문필가였던
선생이 공부하던 [고운대]와 [상서장]도 한번 들러서 잠시 상서장의 정취에 취해보시고..
우측 옆 좁은 샛길에서부터 시작하는
를 잠시 걸어오르면; ([도당터널] 옆)올렛길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게 되고,
[해목령 등산로]를 거쳐 [서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되는데, 이제 순환도로를 걸어
금오봉으로 오르거나, 혹은 포석정 방면으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
[상서장]의 정취
남산 순환도로
는 말이 필요없는, 가장 확실한 남산 등반길의 이정표입니다. 이 임도는 남산을 동서로 관통하는데,
서남산의 [포석정 공원지킴터]에서 시작하여 중도에 [해목령 등산로]에서
과 만나고, 금오봉까지 올라갑니다.
이제부터는 동남산 방면으로 내려가는데, 중도에 [봉화대 능선]으로
과 만나고, 동남산의 [남산동 공원지킴터]에서 긴 여정이 끝나게 됩니다.
여기서 잠시만 걸으면 서출지와 통일전으로 갈 수 있습니다
➥
남산의 북쪽 끝인 [도당터널] 옆 올렛길 입구(또는, [상서장] 옆 등산로)에서 등반을 시작하면;
[해목령 등산로]를 걸어 [포석정 공원지킴터]에서 올라오는
[서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이제 순환도로를 걸어 금오봉으로 오르거나, 혹은 포석정 방면으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남산의 남쪽 끝인 [새갓골 공원지킴터]에서 시작하면; [열암곡]으로 걸어
[봉화대 능선]에 올라타게 되고,
길게 걸어 동남산 방면에서 올라오는 [동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이제 순환도로를 걸어올라 금오봉으로 오르거나, 혹은 동남산의 서출지, 통일전
방면으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
남산 등반을 시작하실 때, 남산의 각 [공원지킴터]에
에서 제공하는 공식 탐방로 종이지도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꼭 챙겨가시고..
등반 시에는 종이지도가 편하긴 한데, 혹시라도 못 챙기고 산을 오르신 경우, 이
라도 참조하십시오
또한, [서남산 주차장]과 [통일전 주차장]에 위치한
에서도 남산 종이지도와 함께,
각 탐방로별 탐방 안내지도(뒷면에는 각 유물, 유적지에 관한 충실한 설명들도 있어 매우 유용합니다)가
비치되어 있으니 꼭 챙겨서 오르시길 권합니다 - 말만 잘하면; 충실한 해설과 함께 꽤 두터운 책자인
도 얻으실 수 있습니다 ^^
✓
참고로, 남산의 탐방(및 등산)로 그림지도는 남산의 길을 개략적으로 알아보고자 할 때는 [경주 국립공원공단] 지도가
살펴보기 좋고, 아주 세밀히 탐방길을 찾아가야만 하는 경우에는 [경주남산연구소] 지도가 유용합니다
- 결론적으로, 두 지도 모두 챙겨서 출발하시면 금상첨화입니다 ^^
목없는 부처님들
░
남산에는, 많은 '목없는 부처님'들이 살고 계시는데,
왜 목이 없는지?
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들이 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매우
불가사의한 주제입니다
박물관에 갇히신 부처님들
남산 탐방로를 오르내리다, 수시로 목없는 부처님들을 보면서 '왜 부처님의 목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한번쯤은 드셨을 터인데.. 그 정답은 아직 없습니다. 어쨌건
목없는 부처님들
은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주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비운의 부처님들만 계시는건 아닙니다. 이 석등 또한 부처님의 상징입니다
- 그래서 부처님의 호위 역사들이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 이제
에 계시는
다른 부처님들
도 잠시 초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 초청하지 않은 의외의 부처님도 깜짝 까메오로 출현하시니 너무 놀라지는 마십시오 ^^
신라 시절 경주 지역에는 거대한 부처님과 쬐끄만 부처님, 아름다운 부처님과 못생긴 부처님, 아줌마 부처님과 처녀 부처님,
할배 부처님과 할매 부처님, 아기 부처님에다 부처님의 수행자와 수호자, UFO 부처님(?)까지..
수많은 부처님들
이 민초들의 삶과 애환이 있는 모든 구석 구석에서 함께 숨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만..
부처님 주변에는 언제나 곁을 따르는 수행자들, 각자의 일을 하는 또 따른 부처님들,
부처님을 지키는 장군들과 호위무사들에다 기괴한 형상을 한 고대의 짐승들(?)도 있었습니다.
좀 무시무시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부처님의 친구들
도 한번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 머, 약간은 무서울겁니다 ^^
참고로, 부처님 주변의 사방 사면 부처님들을 좀 더 살펴보시려면;
신라 천년 불교미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을 만나보시기를 권합니다
✓
경주에 오시면
은 꼭 들러보시기를 권합니다만, 급한대로
신라미술관
의 영상으로 대신하십시오.. (그외에도, 다수의 영상관이 있으니 스스로 찾아가서 살펴보십시오 ㅡㅡ;)
한편, 부처님 중에는 아주 특이한 분도 계십니다.
바로, 부처님의 '자비'를 행하는
중 11개의 얼굴을 가진
이십니다. 이 부처님은 다양한 표정으로 선한 중생(정면의 3얼굴),
악한 중생(좌측 3얼굴), 덕을 쌓아가는 중생(우측 3얼굴)을
모두 구제하고자 하는 가장 자비로운 보살이십니다.
또한, 뒷면 얼굴로는 선악을 궤뚫어보면서 악한 이들을 옳은 길로 인도해주고,
정면 얼굴로는 깨우침에 다가선 이들에게 불도의 오묘한 진리를 알려줍니다
- 간혹은, 다양한 방법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팔 또한 여러 개를 더 보태 휘두르기도 하십니다 ^^
석굴암 관음보살님들
도 그렇고.. 다들 멋진 부처님들이긴 하지만, 저는 이 거만하게(?)
앉아계시는(얼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다리 꼬고 앉은 모습이),
좀 도도해 보이기도 하는
부처님을 가장 좋아합니다. 비록, 양팔과 머리를 잃은 애처로운 부처님이시지만.. 그 유명한 로댕의
조각상보다 훤씬 더 고고하고 심오한, 어쩌면 좀 거만해 보이기도 하는(?)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신라 시절 최상위급 귀족들의 개인 소장품이었을
금동불 부처님들
또한 그 예술미 자체로는 걸작이긴 합니다만.. 당시 민초들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의 생로병사와 애환, 번뇌를
함께 나누면서, 그러한 민초들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 '고뇌'하셨을, 그리하여 팔다리에 머리까지 잃으신,
저 흔하디 흔한 돌로 거칠게(?) 다듬어진 석조 반가사유상 부처님이 저에게는 훨씬 더 정겹게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이 '사색'하는 금동 반가사유상 부처님 또한 깊은 감동과 함께, 하나의 의문도 불러옵니다
░
여기서 잠시,
에 들러 '사유'하는 반가사유상 부처님을 한번 만나뵙기로 합니다
- 이 부처님의 '사유'에는 어떤 '고뇌'가 담겨 있는지?
옛 우물터, 석정
░
여기서 별안간 '우물' 이야기가 끼어드니, 약간은 시답잖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란 간단한 단어에도 우리 조상들의 삶과 애환, 바램 그리고 과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물터 이야기
우리 조상들의 삶과 단 한시도 떨어질 수 없었던, 매일같이 사용하던 그 우물터
-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 수다도 떨고, 떠도는 소문도 전달하고,
정담과 고민도 함께 나누던 곳. 그래서 '우물터'입니다. 마을의 '빨래터' 역시 비슷한 역할을 했겠지요?
는 조선의 천재 풍속화가로서, 당시 우리 서민들의 삶과 생활상을 해학적으로 간결히 묘사해낸
여러 풍속도를 남겼는데..
그 중 한 폭인 이 '우물가' 풍경은 우물터에 얽힌 우리 조상들 삶의 한 가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웃통을 다 드러낸 채 두레박 채로 벌컥벌컥 물을 마셔대는 남정네 앞에서,
우물가 젊은 새댁들은 살~짝 고개를 돌리거나 숙이고서 못본체 하고 있군요 ^^
뒤에서 "ㅉㅉ" 하며 혀를 차는 듯한 나이든 아낙네 표정도 재밌습니다 ^^
✓
'샘' 또한 '우물'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지만, 어감은 약간 다릅니다. '샘'은 보통 땅 밑에서
자연스레 솟아나는 경우를 이르며(예컨대, '솟구쳐 오르는 옹달샘'),
'우물'은 많은 사람들이 항시적으로 쓸 수 있도록 그 샘이 솟아오르는 곳을 파고 돌 등으로 사방을
막아 고이도록 한 곳을 이르는데.. 井우물 정 한자가 바로 그 모양을 본뜬 것입니다(반대인가?)
░
여기서 잠시, 당시 우리 서민들의 삶과 생활상을 해학과 함께 간결한 스케치로 담아낸,
"교묘하게 자연의 조화를 빼앗을 수 있는 데까지 이르렀던"(단원의 후원자 겸 벗이었던 강세황의 평)
천재화가의
를 감상하는 시간을 한번 가져보십시오
- 옆 그림에서는 몰래 숨어서 여인네들의 빨래터를 훔쳐보고 있는 '고상한'(?) 취미를 지닌 선비 양반이 보이는군요 ^^
기왕지사, 단원과 동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천재화가
의
도 한번 감상해보고 넘어가기로 합니다. 신윤복은 김홍도와는 좀 다르게, 서민들의 삶을 다룬
풍속화만 아니라 산수화와 미인도 및 '고상한'(?) 양반 세계를 풍자한 세련된 그림들을 많이 그렸습니다만,
그 또한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습니다
- 옆의 단오날 풍경을 그린 그림에서도 역시 몰래 숨어서 기녀들의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고 있는
'못된'(?) 아이들을 숨겨 놓았군요 ^^
➥
반상班常 구분이 엄격하던 조선시대의 유교 체제에서
유일한 르네상스기였던 영정조 때에,
일반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붓 하나로 해학적으로 간결히 묘사해낸 김홍도나
그 고리타분하던 체제의 갑갑함에서 벗어나려는 여인네들의 애달픈 욕망을 섬세하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선비 양반네들의 숨겨진 가식을 세련되게 풍자해낸 신윤복의 그림들을 살펴보았지만..
사실, 그 당시에
양반네
밑에는 일반 '상놈'보다도 더 밑에서 살아가는
조선 광대
등의 '천민'(요즘의 가수, 배우, 무용가, 스포츠 스타 등 ㅡㅡ;)에다
'불가촉不可觸 천민'(소, 돼지 잡는 백정 등)도 있었습니다.
머, 그건 그렇고, 여기서 조선 광대의
판소리
한 편 듣고 다음으로 넘어가기로 합니다..
경주의 석정들
우리 조상들의 삶과 단 한시도 떨어질 수 없었던, 매일같이 사용하던 그 우물터, 곧 경주의 석정들로는;
김유신 장군의
이야기와 얽혀있는, (당시의 최고위층 집안의 우물이었을)재매정 석정,
[김호장군 고택] 안에 있는 양반댁 석정,
(아마도, 일반 마을 사람들, 혹은 절간에서 쓰던 공동 우물터였을)[남간사지] 석정
등이 남아 있습니다
✓
신라 궁궐에서 사용하던 옛 우물터 위치([왕정골] 맨 위 지점, 현재의 도당터널 아래 땅 밑)가
현재의 [도당터널] 밑이라고 하는데..
[도당터널] 공사에 의해 너무 깊이 묻혀버려 이제는 도저히 찾아낼 도리가 없을 듯합니다 ㅡㅡ;
░
경주의 석정들 들러보기
분황사 석정 이야기
[분황사]에는 삼국통일 이후 당나라의 침략을 대하는 신라인들의 저항 심리가 담긴
'기묘한 이야기'(『삼국유사』)로 전해지는
이 있는데.. 여기에는 이 석정 안에 살고 있는 3마리의 호국용 이야기,
조선시대 때 분황사 내 모든 돌부처의 목을 잘라
이 우물 안에 넣었다는 '아픈 이야기' 등의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
➥ 호국용 이야기
『삼국유사』에 이 우물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분황사 우물과 금학산 동천사(東泉寺)의 동지와 청지라는 우물에 신라를 지키는 세 마리의 용이 살았다.
원성왕 11년(795)에 당나라 사신이 주술을 써서 이 용들을 물고기로 둔갑시켜 잡아갔다.
이 용들의 부인이라는 두 여인이 왕 앞에 나타나 남편을 찾아줄 것을 청하였다.
왕은 사람을 시켜 물고기를 다시 빼앗아 각각의 우물에 놓아주자,
물이 한 길이나 솟아오르고 용들이 기뻐하며 날뛰었다
..
그러나 이 우물에는 조선 시대에 분황사에 있던 모든 돌부처의 목을 잘라 이곳에 넣었다는 아픈 이야기 또한 전해진다
- [분황사석정 안내판]
(
)
분황사와 황룡사지
░
[분황사 석정]을 찾아본 김에, 그외에도 많은 '기묘한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오는
와
중 하나라는
및
이 자리했던
도 겸사겸사 한번 돌아보기로 합니다
분황사 둘러보기
[분황사]에는 그 거대하게 자리잡은
과 함께, 신라의 대미술가
가 [황룡사]에 그렸다는 (새들이 나무로 알고 날아와 벽에 부딪쳐 죽었다는, 바로 그)벽화(의 모사?),
의 친필이 음각되어 있는 원효대사비 받침돌 등의 다양한 유물들과 '기이한'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솔거는 일찍이 황룡사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는데(老松圖),
몸체와 줄기는 비늘처럼 주름지고, 가지와 잎이 구불구불하게 얽혔다.
까마귀·솔개·제비·참새가 때때로 그것을 보고 날아들었다가, 와서는 비틀거리다 떨어지곤 하였다
세월이 오래되어 색이 바래지자, 절의 승려가 단청으로 그것을 보수하였더니, 까마귀와 참새가 다시 오지 않았다.
또 경주 분황사 관음보살과 진주 단속사 유마상은 모두 그의 필적이다.
대대로 전해지며 신묘한 작품으로 여겨졌다
-『삼국사기』
(
)
경덕왕때 한기리에 사는 여인 희명의 아이가 태어난 지 5년이 지나자 문득 눈이 멀었다.
하루는 그 어미가 아이를 안고 분황사 좌전 북쪽 벽에 그린 천수대비(千手大悲) 앞에 나아가서
아이로 하여금 노래를 불러 빌게 하니 마침내 눈이 밝아졌다
-『삼국유사』, 분황사천수대비 맹아득안
(
)
또한, 딴 곳의 그 흔한 당간지주들과는 달리 많이 특이한 형태의
도 장대하게 펼쳐진 [황룡사지] 앞에 떡하니 자리잡고 서 있습니다
░
분황사 둘러보기
황룡사지 돌아보기
이제 [분황사] 앞에 장대하게 펼쳐져 있는 [황룡사지]도 한번 거닐어보기로 합니다. 다만, 이
은 워낙 넓은 곳이라서(황룡사지 터에 축구장을 만든다면; 한 10개는 만들 수 있을듯 ㅡㅡ;)
다리품 좀 팔아야 합니다 ㅡㅡ;
아직도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라 직접 볼만한 탑이나 부처님 등은 만나볼 수 없지만,
호국 신라를 상징하는 신라의 3대 보물이라던 그 거대했던 9층목탑 자리의 초석들과 장륙상이 놓여졌던
석조대좌 등은 찾아볼 수 있습니다 - 각각 모두 엄청하게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해동의 명현(名賢) 안홍(安弘)이 편찬한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라 제27대에 여왕이 왕이 되니 도(道)는 있으나 위엄이 없어 구한(九韓)이 침략하였다.
만약 용궁 남쪽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면 곧 이웃나라의 침입이 진압될 수 있다.
제1층은 일본, 제2층은 중화, 제3층은 오월, 제4층은 탁라, 제5층은 응유, 제6층은 말갈, 제7층은 거란, 제8층은 여적, 제9층은 예맥이다”
-『삼국유사』, 황룡사구층탑
(
)
░
황룡사지 둘러보기
낭산을 바라보며
░
옆 버스승강장(다리 옆)이 있는 곳에서 [남천] 건너편을 바라보면;
신라 시절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오던
이 눈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 아주 낮고, 쬐~끄매서 평범한 야산으로 보이지만.. 그리 시시한 곳이 아닙니다 ^^
경주 낭산일원
천년숲 정원 이 시작되는 지점 삼거리 도로(다리, 버스정류장)에서
남산을 등지고 앞을 바라보면; 바로 코 앞으로
가 위치한 작은 솔숲이 있고, 그 너머 도로 건너편으로
가 보입니다 - 바로 뒤 길게 펼쳐진 낮은 야산은 늑대와 신선들이 살았다는,
『동국여지승람』에서 '경주의 진산'이라고 한
입니다
[낭산]은 신라 왕실의 초창기부터 '신령들의 산'이라고 부르며 신성시해 왔던만큼(『삼국사기』),
그 일원은 작은 남산이라고 불러도 될만치 많은 유물, 유적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 도리천
과 (그 밑에서 도리천을 지키고 있는)
, (문무왕의 화장터인)
,
,
,
[경주국립박물관]으로 옮겨진 [십일면 관음보살상]
등등..
삼국통일 당시 당나라의 침공을 물리친 문무대왕이 당나라의 또 다른 침략을 막으려는 기원으로
[사천왕사]를 지었다는 말에 당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살피러 온다고 해서 [사천왕사]로 속이기 위해 [망덕사]를 지었다는
도『삼국사기』및『삼국유사』에 전해집니다만.. 머, 트럼프란 힘만 쎈 거지넘이 맨날 돈 내놓으라고 우리 대한민국을 압박해대는
지금도 그렇듯이, 그때나 지금이나,, 약소국의 비애입니다 ㅡㅡ;
░
낭산 둘러보기
➥ 선덕여왕의 '도리천'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거든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다는데,
하지만 도리천은 하늘 위에 있는 부처님의 산인 수미산의 맨 꼭대기에서 부처님 세상을 호위하는 곳인데(?)
제27대 덕만(德曼)의 시호는 선덕여왕으로 성은 김씨이며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나라 다스리기 16년 동안에 미리 안 일이 세 가지 있었다
1.
당태종이 홍색·자색·백색의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꽃 그림과 그 씨 석 되를 보내왔다.
왕이 그림의 꽃을 보고 말하기를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다” 하며 이에 씨를 정원에 심도록 명하였다.
꽃이 피었다가 떨어질 때까지 과연 왕의 말과 같았다
- 당시에 여러 신하가 왕에게 어떻게 그렇게 될 줄을 알았는가 물었다.
왕이 대답하기를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는 바로 당제(唐帝)가 나의 짝이 없음을 희롱한 것이다”
2.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 겨울임에도 많은 개구리가 모여 3,4일 동안이나 울었다..
(* 이 이야기 관련 여왕의 답변은 18금이라서 생략함 - 직접 [삼국유사]에서 찾아보세요 ^^)
3.
왕이 아무런 병도 없는데 여러 신하에게 말하기를
“짐은 모년 모 월일에 죽을 것인즉, 나를 도리천(忉利天)에 장사 지내도록 하여라” 하였다.
군신들이 그 곳의 위치를 몰라 “어느 곳입니까?” 하니 왕이 말하기를 “낭산(狼山) 남쪽이다” 하였다.
모 월일에 이르러 과연 왕이 승하하시므로 신하들이 낭산의 양지바른 곳에 장사지냈다
- 그 후 10여 년이 지난 뒤 문무대왕이 사천왕사를 왕의 무덤 아래에 창건했다.
불경에 이르기를 사천왕천(四天王天)의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그제사 대왕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 수 있었다
-『삼국유사』, 선덕여왕 知幾三事 (* 내용 편집)
(
)
✓
현재 [선덕왕릉]이 있는 [낭산] 정상이 바로 신라 시대의 '도리천'이었고, [사천왕사]의
은 그 '도리천'을 지키는 호국신이었습니다. 한편, [망덕사]는 당나라로부터 [사천왕사]로 속이기 위해 지은 절이었는데,
여기에는 죽은 뒤 다시 살아돌아온 '망덕사 선율스님 이야기', '불무사와 진신석가 이야기' 등의 여러 전설이 전해집니다..
문무대왕의 염원
낭산의 정수리에 자리잡은 [선덕여왕릉],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한
의 화장터인 [능지탑], 문무왕이 당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또 선덕여왕의 '보리천'을 지키기 위해
지은 [사천왕사], 당나라로부터 [사천왕사]를 숨기기 위해 지은 [망덕사] 등.. 모두 삼국통일 전후
신라 지배층의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호국 일념이 깃들어 있는 유서깊은 곳들입니다
- 단지, 이전부터 신라 왕실에서 신성시해왔기에 '신령스런 산'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삼국통일의 기반을 구축한
선덕여왕의 꿈
과 삼국통일을 완수하고 이어지는 당나라의 침공에 맞서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자 했던
문무대왕의 염원
이 깃들어 있습니다. 문무대왕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며, 자신이 죽으면 간소하게 화장하여
동해 바다에 뿌려주면 거기서 왜구의 침입을 막겠다는 유언을 남겨 감포 앞 [대왕암]에 안장되었는데,
바로
입니다
- 그 이후로 문무왕은 호국용이 되어, 지금까지 동해 바다에서 왜구의 침입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대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21년 만에 붕어하니, 유조를 따라 동해 중의 큰 바위에 장사지냈다.
왕이 평소에 항상 지의법사에게 이르기를 “짐은 죽은 뒤에 호국대룡(護國大龍)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한다” 하였다.
법사가 말하기를, “용이란 축생보(畜生報)가 되는데 어찌합니까?” 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랜 지라, 만약 나쁜 응보를 받아 축생이 된다면 짐의 뜻에 합당하다” 하였다
-『삼국유사』, 문무왕의 죽음
(
)
문무왕의 아들인
은 태종무열왕과 문무대왕이 이룩한 삼국통일 이후, 통일 신라의 기틀을 공고히 다졌는데,
문무대왕을 [대왕암]에 장사지낸 뒤
를 세우면서 용이 된 아버지가 이곳을 드나들 수 있도록 감포 앞바다로 나가는 지하 수로도 뚫어뒀다고
합니다('감은사'는 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대체 왜? 어떻게?? 당시 삼국 중 한반도의 가장 외곽에 위치한, 척박한 땅에서 시작하여 국력도 가장
약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원동력이 바로 이 낭산에 남은 유물 유적지들에서 보여지는,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당시 지배층의 호국 일념이었던 듯합니다
- 신라의 호국을 상징하는 [황룡사 9층목탑]과 [황룡사 장륙상], '호국용 이야기'로 전해지는
[분황사 석정] 또한 그 호국의 일념에서 나온 국가 수호의 의지를 드러낸 상징물들이었습니다!
░
삼국 중 가장 약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데에는, 많은 이전의 공헌자들이 있었습니다.
선덕여왕 이후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 된 태종무열왕
(와 그 동생 김인문),
그리고 흥무대왕
장군을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김춘추의 무덤인
및
, 삼국통일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김인문의 넋을 기린
,
등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저 주역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도 한번 찾아가보십시오
윤가네 亡山 이야기
░"귤이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된다" 는 옛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그와는 반대로, 미꾸라지가 어쩌다가 山에 올라 지 분수도 모른 체 龍으로 승천한 것으로 착각하여
王이라도 된듯이 맨날 밤 주구장창 술에 쩔은 채 매관매직만 일삼다 亡한 자도 있다고 합니다
산신이 나타나 춤을 추다
시절은 표면적으로는 삼국통일 이후 신라의 최정점에 선 태평성대 시기였다고 하는데,
이 헌강왕은 용왕을 만나 그 아들인 '처용'을 궁으로 불러들이고(
와 처용가, 처용탈 이야기), [포석정] 방문 시에는 남산의 신인 '상심'이 나타나 왕 앞에서 춤을 추어보였다고도 합니다
- 이른바, 요즘 무속인들의
인데.. 옆에 있던 신하들은 아무도 '상심'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왕이 직접 그 춤을 신하들 앞에서 시연해서 보여주었다고 전해집니다
제49대 헌강대왕 때는 경사(京師)에서 해내(海內)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장이 연이어져 있었으며, 초가집은
하나도 없었다. 풍악과 노래 소리가 길에 끊이지 않았고, 바람과 비는 철마다 순조로웠다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
(
)
그 외에도 '북악신', '지신' 등이 나타나 왕 앞에서 춤을 추었다는 얘기들도 이어집니다.
이처럼 헌강왕에 얽힌 신라의 '태평성대' 시절 이야기들은 이구동성으로 전해지지만.. 이에 대해
당시의 어떤 책(『어법집(語法集)』- 이 책은 현재 전해지지 않습니다)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산신이 나타나 춤을 추고 노래를 한 것은 나라가 장차 멸망할 것임을 암시한 것인데,
나라 사람들은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상서(祥瑞)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여
향락에만 너무 심하게 빠졌기에 나라가 마침내 망하였다
-『삼국유사』, 산신들이 나타나 춤을 추다
(
)
실제로, 신라의 최전성기였다는 [헌강왕] 이후.. 모든 부와 권력을 독점한 채,
자신들만의 달콤한 향락을 누리고 있던 당시의 진골 지배층에 대한 하층민들의 반란이 본격화되고,
이후 통일신라는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헌강왕 시절의 그 번영이 바로 신라의 멸망으로 가는 시작점이었던 것입니다 ㅡㅡ;
제51대 진성여왕은 임금이 된 지 몇 해 만에, 유모 부호 부인과 그의 남편 위홍 등
서너 명의 총신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하여 정사를 어지럽히니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삼국유사』, 진성여왕 거타지
(
)
░
로마제국 등 모든 역사상의 대제국들이 그러하였듯이.. 통일신라 또한 너무 긴 평화와 소수에 의한
부와 권력의 독점이 지배층의 나태를 부르고, 소외된 하층민의 반란들 틈바구니 속에서
결국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 역사의 전철을 밟게 되었군요
이것이, 제국을 멸망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는 우발적 사건들은 각기 다를지라도, 로마나 당나라 등
인류사에 출현한 어떠한 대제국들도 결코 피하지 못했던, 인류 역사의 철칙인 듯 합니다
- 물론, 이 또한 우리 인류의 지성과 문명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밟고
올라서야만 했던 인류 역사상의 고된 한 계단이었습니다!
龍과 지렁이, 미꾸라지 이야기
전설 속의 생물인
dragon
은 단지 우리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민족의 역사에 등장하는, 매우
불가사의한
'존재'입니다(저는 단지 상상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인류의 원시시대 때.. 당시까지 잔존했던 마지막 공룡이었던, 날아다니는 거대한 익룡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담아서 수만년에 걸쳐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한편, 같은 龍자 항렬인 地龍(= 지렁이)는 진흙을 파고 들어가서 물을 흐려놓곤 하는데,
그 더럽힌 물 속에서도 홀로 잘 살아가는 넘입니다. 또한, 암수 한몸으로서 몸 안에 암수의 생식기가 모두 존재합니다.
또 다른 龍자 항렬인 龍주래기(= 미꾸라지)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
'미꾸리처럼 (법망을)잘도 빠져나간다'는 속담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사회 풍자의 주된 단골 메뉴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같은 龍자 항렬 친척 중에는 고위봉 아래 사는 螭龍(= 이무기)도 있습니다 ^^
➥ 窮민이 계몽될 시간(?)
이쯤이면.. '사과는 개나 주고', 정치합네 하면서 龍山宮 용산 궁궐
에 틀어박혀 무속과 술에 쩔어 지내던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생각나지 않나요?
여기서 불현듯, 龍山 궁궐에 처박혀 맨날 밤
주야장천(= '주구장창')으로 술만 처묵으면서 편하게
놀아대기 위해 멀쩡한 집 주변에 '龍'자 부적 여기 저기
붙여놓은(머, 지넘이 붙였겠지요?) 山으로 옮기고, '반국가세력(?) 척결'을 명분삼아
'구妻의 결단'으로 지 여편네의
매관매직(우리는 조선시대 후기의 역사를 배우면서 조선을 망하게 한 '매관매직'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습니다만, 이번에 개명천지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번 이 단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ㅡㅡ;)
부정부패를 덮으려 황당 '궁민 계夢령'을 들고나섰던 어떤
幪키호테 '王'(오직 VIP 1번 자신과 자신의 상전인 VIP 0번 뇬만이 나라의 王이고 龍이고자 했던 넘이기에, 그 뜻이 애틋하여 억지로 붙여준겁니다 ^^)
넘이 떠오르는군요 ㅡㅡ;
法꾸라지 한마리가 어쩌다 龍이 사는 山에 오르더니 건희네 宮 안에서 질탕 놀아대며
온 나라를 망가뜨려 놓고는 건희와 함께 암수 한몸 '권력공동체' 지렁이로 화하여 끌려 내려오다
- Kjc, ⌜소소한 소감⌟
░
우리 신라의 역사 속에 깃들어 있는 호國용을
호妻용으로 둔갑시킨 저넘더러 좀 배우라고,
여기서 잠시 진짜 護國龍으로 승화한 문무대왕의 염원이 서려있는 [감은사지]로 들러봅니다
신라의 고승 이야기
░
신라에는 참으로 많은 고승들이 기이한 행적과 함께 호국 불교를 설파해 왔는데.. 여기서도 용이 나타나지만,
좀 나쁜 용들 이야기입니다 ㅡㅡ;
신라의 고승 이야기
먼저, 신라
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밀본법사(密本法師)의 행적부터 들어보기로 합니다
선덕왕이 병에 걸린 지 오래되었는데, 흥륜사의 중 법척(法惕)이 조칙에 응하여 병시중을 들어 오래 되었으나 효험이 없었다.
이때에 밀본법사가 덕행으로 나라에 명성이 높아서 좌우에서 그를 대신할 것을 청하니 왕이 조서를 내려 궁궐 안으로 맞아 들였다.
밀본은 신장 밖에서 ≪약사경(藥師經)≫을 읽었다.
권축(卷軸)이 한번 돌자, 가지고 있던 육환장(六環杖)이 침전 안으로 날아 들어가서 한 마리 늙은 여우와 법척을 찔러 뜰 아래로 거꾸로 내던졌다.
왕의 병이 이에 나았는데, 이때 밀본의 정수리 위에 오색의 신광(神光)이 발하니 보는 사람이 다 놀랐다
-『삼국유사』, 밀본최사(密本摧邪) (* 내용 편집)
(
)
승상(承相) 김양도가 어린 아이일 때 갑자기 입이 붙고 몸이 굳어져서 말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매양 한 큰 귀신이 작은 귀신을 이끌고 와서 집안의 모든 음식을 다 맛보는 것을 보았다.
무당이 와서 제사를 지내면 곧 무리가 모여서 다투어 희롱하였다.
양도가 비록 물러가라 명령하고자 하여도 입이 말을 할 수 없었다.
부친이 법류사의 중에게 와서 경전을 전독하게 청하니 큰 귀신이 작은 귀신에게 명하여서 철퇴로 중의 머리를 쳐서 땅에 거꾸러져 피를 토하고 죽었다
며칠 후에 사자를 보내 밀본을 맞아오게 하니 사자가 돌아와 말하기를 “밀본법사가 제 청을 받아들여 장차 올 것입니다”라고 하니
귀신들이 그것을 듣고 모두 얼굴빛이 변하였다.
작은 귀신이 말하기를 “법사가 오면 장차 이롭지 못할 것이니 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자 큰 귀신이 거만을 부리면서
“어찌 해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조금 후에 사방의 대력신(大力神)이 모두 쇠 갑옷과 긴 창을 지니고 와서 귀신들을 잡아 묶어 갔다.
다음으로 무수한 천신(天神)이 둘러싸고 기다렸고, 잠시 후 밀본이 와서 경전을 펴기를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그 병이 이제 완치되어 말이 통하고 몸이 풀려서 사건을 온전히 설명하였다
-『삼국유사』, 밀본최사(密本摧邪) (* 내용 편집)
(
)
"머, 니만 있냐? 나도 있다" 하며 나타나는 분이 또 계시는군요 ^^
바로, 神遊林 신유림(신선들이 머무는 곳 - 현재 낭산 일원)을 세우신
명랑법사(明郞法師)이십니다
밀본법사(密本法師)의 뒤에 고승 명랑(明郞)이 있었다.
용궁에 들어가 신인(神人)을 얻어 신유림(神遊林)을 처음 세우고 여러 차례 이웃나라의 침입을 물리쳤다.
이제 화상은 무외삼장(無畏三藏)의 골자(骨子)를 전하고 속세를 두루 다니면서 사람을 구제하고 만물을 감화시켰다.
아울러 숙명(宿明)의 밝은 지혜로 절을 세워 원망을 풀어주었고, 밀교(密敎)의 교풍이 이에 크게 떨쳤다
-『삼국유사』, 혜통항룡(惠通降龍) (* 내용 편집)
(
)
여기서 끝날 수는 없겠지요? 권력家나 부자家나 모두 3대는 걸쳐 내려가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하는데(돈 없는 집안의 아이들은 제대로 과외 받기도 힘드니.. 부도 권력도 세습이 되면서 축적되어 간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
여기서 멈출 수는 없겠지요?
『삼국유사』에는 남간사 마을에 살던
이 깨우치고 출가한 동기를 알려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남간사] 동쪽 마을에 살던 혜통은 출가하기 전, 어느 날 동쪽 시내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서 죽이고 뼈를 동산 안에 버렸다.
이튿날 아침 그 뼈가 사라졌는데 핏자국을 따라서 찾아가니 뼈는 원래 살던 굴로 돌아가서 새끼 다섯을 품고 웅크리고 있었다.
혜통이 그것을 바라보고 놀라고 이상하게 여기기를 오래 하였다.
감탄하고 망설이다가 문득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여 이름을 혜통으로 바꾸었다
-『삼국유사』, 혜통항룡(惠通降龍) (* 내용 편집)
(
)
이 혜통은 당나라로 유학하여
삼장법사의
가르침을 받고, 흰 콩과 검은 콩만으로 당나라 공주의 몸에 깃들어 있던 교룡(蛟龍)을 쫓아냈다고 하는데..
귀국한 뒤에도 당시 달아나서 신라로 들어와 있던 용과 다시 싸워 내쫓고 또 깨우쳐주기도 하는 등
많은 기이한 일들을 행하면서 불교(密敎)를 전파한 고승이라고 합니다
용은 혜통이 자기를 쫓아낸 것을 원망하여 본국의 문잉림(文仍林)에 와서 인명을 더욱 해쳤다.
이때에 정공(鄭恭)이 당에 사신으로 갔는데 혜통을 보고 일러 말하기를
“법사가 쫓은 독룡(毒龍)이 본국으로 돌아와 해가 심하니 빨리 가서 그것을 없애 주시오” 라고 하였다.
이에 정공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와 그것을 쫓아버렸다.
용은 또 정공을 원망하여 이에 버드나무로 변하여 정공 집의 문 밖에 나 있었다.
정공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그 무성한 것을 기려서 매우 사랑하였다
.. [* 주) 이후, 정공은 길을 막고 있던 버드나무를 베어 길을 내려는 효소왕에게 저항하다 죽임을 당함]
용은 이미 정공에게 원수를 갚고 기장산에 가서 웅신(熊神)이 되었는데
해독을 끼치는 것이 더욱 심하여 백성들이 매우 괴로워했다.
혜통은 산 속에 가서 용을 깨우쳐 불살계(不殺戒)를 주었고, 웅신의 해가 이에 그쳤다
-『삼국유사』, 혜통항룡(惠通降龍) (* 내용 편집)
(
)
░
참으로 기괴하고 기묘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
말 나온 김에, 세계 불교사상 최고 고승 중 한명으로 꼽히는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와 함께 모험을 떠났던)
의
대당서역기
도 한번 감상해보십시오
비록 손오공 같은 기괴한 능력을 지닌 제자들과 함께 다니지 않아 덜 유명하긴 하지만..
세계 4대 여행기 중 하나로 꼽히는, 신라의 승려
의 서역 순례기인
왕오천축국전
도 있습니다([프랑스국립박물관] 소장)
골굴암과 기림사
░불국사에 있을 때 자전거(전기 자전거 ㅎ) 타고 토함산 석굴암에 올라
감포 쪽으로 내려가서
의
(문무대왕의 염원이 서린)
를 거쳐
와
까지 내려가 본 적이 있는데, 다들 꽤 재미있는 곳입니다
골굴암 탐험
불국사에 있을 때 보니,
제 친구 상거리(불국사에서 떡집 하고 있는데, 날로 번창하고 있다고 합니다)는
저와는 달리, 수시로 일반 자전거로 토함산 오르더군요 ㅡㅡ;
언젠가 이 넘 왈~
“야, 우리 담에 자전거로 전국 라이딩 함 하자”
머,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이어지는 황당 개무시:
“나는 일반 자전거로 가고, 니는 전기 자전거로 가고”
(나 참, ㅡㅡ;)
[감은사지]에서 감포 바닷가 방면으로 향하여 해변을 따라가면;
[문무대왕릉]을 지나 해변가로 꽤 길게, 멋지게 펼쳐진
주상절리를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 여기서는 [골굴암] 방면으로 가보기로 합니다.
[골굴암]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리고 겁도 좀 납니다, 각오하세요 ^^
여기서는 똑바로 서서 사진을 찍어도 아슬~ 아슬~ 비틀, 비틀하게 나옵니다 ^^
남산 [천동골]의 천동탑을 이 거대한 석회암 바위산 전체에다 새긴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거기서는 구멍 하나 하나에 부처님을 새기지 못했지만(구멍 하나 하나가 부처님을 의미한다고 합니다만),
여기서는 구멍 구멍마다 부처님을 모시려 한 것이 아닌가 싶군요
여기도 역시 딴 곳들과 마찬가지로, 멋진
께서 아래 민초들의 삶을 인자한 미소와 함께 고고히 굽어보고 계십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신라의 호국 불교인
밀교의
호국 무술이자 신라의 호국 청년 무사들인
이 단련하던 무술이었다는
공연도 (하루 한번만)볼 수 있습니다.
이참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신라의 화랑들이 연마하던 운동도 한번 따라서 (구경만?)해보십시오
- 발레보다도 더 우아하고, 태권도보다는 더 부드러운 감이 드는군요:
선무도 시연 1
선무도 시연 2
░
골굴암 오르기
➥ 소소한 잡담
다 좋은데.. 부처님 오신 날 기린다고 에워싼 오색 풍선들이 난무하면서 멋진 '작품'을 버린 듯.
무슨 작품을 버렸나요? 스님들이 조성한 골굴암 혹은 내가 찍은 사진;
여기서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코딩 문법 중 하나를 배웠습니다:
조건? 실행1 : 실행2;←조건 이 참이면; [실행1]을 수행하고, 거짓이면; [실행2]를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어렵나요? 곧바로 답변이 달렸군요 ^^
이상문: 어렵다!
상무이가 어렵다고 엄살부려서; 쉽게 풀이해봅니다:
풍선들이 내 사진을 버렸나요? 저 사진의 풍선들을 다 터뜨려라 : 내가 올린 사진들을 다 삭제하라;
✓ 해석: 풍선들이 내 사진을 버렸다면; '저 사진의 풍선들을 다 터뜨리라'는
(앞쪽)명령을 수행하고, 아니라면; '내가 올린 사진들을 다 삭제하라'는
(뒤쪽)명령을 수행하라고 컴퓨터에 지시하는겁니다 ^^
머, 컴퓨터는 조건 을 판단해서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줄 겁니다만,
혹시라도 조건 이나 명령 이 애매하게 작성되어 있어 판단 을 내리기 어렵다면;
컴퓨터는 다운되고 맙니다 ㅡㅡ;
구도의 길, 기림사
다리 후들후들 떨리는 [골굴암]까지 올라본 김에 원효가 창건하고 지냈다는 그 옆 [기림사]도
들러보기로 합니다. 불국사를 살~짝 축소해놓은 듯한 모습이지만,
불국사처럼 거대하고 화려하지 않으면서 좀 더 은은하고 조용한 사찰입니다.
여기에는 5곳에서 흘러나오는 오정수(五井水)와 천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라는 한약초,
용이 된 문무대왕과 김유신이 전해준 신문왕의 호국 피리인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 또한, 임진왜란 때는 왜군에 대항하는 호국 승병들의 거점이었다고도 합니다
░
기림사 돌아보기
➥ 만파식적 이야기
『삼국유사』('만파식적' 편)에서는 신문왕이 용이 된 문무대왕과 김유신으로부터 얻은 호국 피리인
만파식적 이야기를 장황하게 전하고 있지만.. 김부식은 그 이전에,
『삼국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고기(古記)에는 “신문왕 때에 동해 가운데에 홀연히 작은 산이 나타났는데, 모습이 거북이 머리와 같았다.
그 위에 한 그루의 대나무가 있어서 낮에는 갈라져 둘이 되었다가 밤에는 합해져 하나가 되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 베어다가 적(笛)을 만들고 이름하여 만파식(萬波息)이라 하였다” 라고 하였다.
비록 이러한 이야기가 있으나 괴이하여 가히 믿을 수 없다
-『삼국사기』
(
)
✓
한번 불면 많은 기이한 능력들을 발휘하기도 하고, 여러번 분실되기도 하고,
이름이 바뀌기도 하는 등의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현재 [경주박물관]의 수장고에 비밀스럽게 보관되어 있는
이 바로 그 [만파식적]이라고 합니다, 다행이군요 ^^
포석정 가는길
░
이제부터 남산의 [서남산 둘레길] 방면을 돌아보기로 합니다.
먼저 남간사지 에 들러서 주변을 한번 돌아보고, 천년 신라와 경애왕의 비운이 서려있는
걸어보기로 합니다..
남간사지 탐방하기
1.
[도당터널] 앞 [올렛길]에서
출발한다면(여기서, 곧바로 [해목령 등산로]로 오를 수도 있음);
입구 오른쪽 아주 좁은 길로 잠시 걸어서 내려가다 정자가 있는 삼거리 길목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여기서부터는 차가 다닐 수 있음) 식혜골 마을 에 있는
이 나오는데, 잠시 들러서 우리 조상들이 살던 옛 집의 정취에 맘껏 취해보십시오
░
식혜골의 [김호장군 고택]에 가보면;
우리 조상들이 살던 옛 집의 형태와 석정(우물)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2.
[식혜골] 마을에서 쭈~욱 삼릉 가는길 방향으로 가면 [남간사지]가 나옵니다.
또는, 차로 다니려면;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알영왕비의 무덤인
사거리 부근 나정에서부터 여정을 시작하여 남간사지 마을 로 갈 수도 있습니다.
[남간사지]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왔다는 우물이 있는
과 당시 (박혁거세를 초대 왕으로 올립했던)신라 6부족 촌장들을 모신 육부전,
,
,
등의 들러볼거리가 있습니다
░[남간사지] 둘러보기
3.[남간사지] 당간지주 옆에서 계속 농로를 따라 뚜벅, 뚜벅
걸어가다보면(시멘트로 포장한 좁은 농로지만, 승용차로도 갈 수 있음); 좌측편으로
이 우뚝 솟은 채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잠시, [창림사지]도
한번 들러보시고.. 다시 내려와, 농로를 따라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 우리의 목적지인
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
포석정 가는 길 옆에 우뚝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창림사지 삼층석탑]
해목령 오르기
░
남산의 북쪽 끝인 올렛길 입구([도당터널] 옆)에서 등반을 시작하면;
를 걸어 [포석정 공원지킴터]에서 올라오는 [서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올렛길에서 오르기
[도당터널] 앞 올렛길 입구에서 [해목령 등산로]로 올라
잠시만 걸어가면 상서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고.. 계속해서 오르면;
장창곡 [석조 미륵여래삼존상] 출토지인
곁을 살짝 지나(찾아보시려면; 길 옆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미리 알고가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게 됩니다 - 그 부근 등산로 길에 안내 표지판 있음),
동남산의 불곡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게 됩니다(역시, 길안내 표지판 있음)
주변 사방팔방으로 우창터와 서창터 및 남산신성들로 둘러쌓인 채 걸어,
잠시 후 서남산의 일성왕릉에서 올라오는 작은 오솔길에 이어
동남산의 [옥룡암] 마애불상군 뒤쪽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도 만나게 됩니다.
오르는 주변 사방은 (둘러싼 [남산신성]과 함께)[우창터], [서창터], [동창터] 등의 흔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長倉谷 지역입니다
예전에 신라의 국력이 한참 뻗어가던 법흥왕(및 진흥왕) 시기, 식량과 무기 등을 보관하기 위해 사방을 둘러싸는 거대한 성벽인
을 쌓고 큰 창고들(서창터, 중창터, 동창터 등)을 지은 흔적들이 사방으로 널려있는 곳입니다.
계속 오르다보면; 아랫 마을 풍경을 볼 수 있는 시원한 전망대도 나오고..
좀 더 나아가면; (남간사지 당간지주 옆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해목령 삼거리]를 지나
(포석정에서 올라오는)[서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선덕왕때 생의(生義)라는 스님이 항상 도중사(道中寺)에 거주하였다
[하루는] 꿈에 한 스님이 그를 데리고 남산으로 올라가 풀을 묶어서 표를 하게 하고,
산의 남쪽 마을에 이르러서 말하길, “내가 이 곳에 묻혀있으니 스님은 꺼내어 고개 위에 안치해주시오”라고 하였다.
꿈을 깬 후 표시해 둔 곳을 찾아 그 골짜기에 이르러 땅을 파보니 석미륵(石彌勒)이 나오므로
삼화령(三花嶺) 위에 안치하였다.
선덕왕 13년에 그곳에 절을 짓고 살았으니 후에 생의사(生義寺)라 이름하였다.
- 충담(忠談)스님이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달여 공양한 것이 바로 이 부처님이다
[남간사지] 당간지주 옆에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
해목령을 향해 올라서서 꽤 호젓한 능선 길을 길게 오르다 보면;
겨우 한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간단히나마 목을 축여볼 수 있는 작은 '약수터'를 만날 수 있는데..
남산에서 '약수터'라는 이름이 붙은 유일한 곳입니다 - 이른바, 해목령 약수터 ㅡㅡ;
아무리 그래도 약수물인데.. 예의상 한잔 마시고, 잠시 쉰 뒤 출발하면;
옆으로 무시무시하게 생긴 게눈바위가 보이고,
곧바로 올렛길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해목령 삼거리]가 나옵니다
[남간사지]까지 함께 왔지만, 삐져서 지 혼자 [일성왕릉] 뒤편으로 올라간 친구와도
(비슷한 시간대에)여기서 조우하게 됩니다
- 지 혼자 삐져서 따로 떠난 넘인데, 그래도 반갑나요?
함께 손에 손잡고 살짝만 더 앞으로 걸어가면;
(포석정에서 올라오는)[서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되고,
이제 순환도로를 걸어
오르거나, 혹은 포석정 방면으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
참고로, 이 [서남산 순환도로] 갈림길에서 길고 호젓한 등산로를 걸어내려
[옥룡암]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습니다. 사진 뒤편 '들어가지 마시오' 줄을 넘어서 내려가시면 됩니다
- 상큼한 주변 숲에 둘러쌓인 채, 호젓하게 걸어가는 꽤 긴 오솔길 산책로입니다..
금오정으로
░
이번 탐방로는 포석정 공원지킴터에서 출발하여
[서남산 순환도로]로 걸어서, 혹은 [부엉골]로 올라서
금오정으로(나아가 금오봉까지)오르는 길입니다
- 먼저 지도를 살펴보시고 여정을 정하십시오
순환도로 오르기
첫번째 팀은, 좀 길지만 쉽게 걸을 수 있는(당연히, 등산의 재미는 좀 없습니다 ㅡㅡ;),
포석정 공원지킴터에서 남산을 동서로 횡단하는
금오정(및 금오봉)까지 오르기로 합니다
포석정 공원지킴터에서 [서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다 보면;
가장 먼저 이 표지판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을 만나러 올라가는 길입니다. 짧은 길이니 한번 올라가 보십시오. 계속 더 오르다 보면;
이번에도 표지판 하나를 만납니다. 바로, [포석곡] 마애여래좌상을 만나러 오르는 길입니다.
잠시만 힘주어 오르면 되니, 여기까지 온 김에 한번 올라가 보십시오. 다시 내려와서, 꽤 긴 도로길을
한참동안 굽이굽이 돌아오르다 보면;
쉬어갈 벤치들도 마련되어 있는 넓직한 삼거리 갈림길이 나옵니다.
바로 여기서 [해목령 등산로]에서 나오는 길과 만나게되고, 계속 순환도로로 오르면;
금오정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고, 금오봉을 향합니다만,
꽤 오래 걸었으니 요기도 좀 하시면서 잠시 쉬십시오
✓
표지판의 뒤쪽에는 '들어가지 마시오' 줄이 가로막고 있는데, 바로 [옥룡암] 뒤
마애불상군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 하늘 끝까지 쭉쭉 뻗은 수목림들을 거쳐서, 조용한 주변 풍경과 함께 호젓한 길을 걸어,
동남산의 옥룡암까지 내려갈 수 있는 꽤 긴 등산로입니다.
현재는 부근에서 [남산신성]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라 임시로 줄을 쳐놨습니다만..
머, 올라오시거나 내려가시거나 ^^
다른 팀은, 포석정 공원지킴터에서 [부엉골] 방향으로 들어가([공원지킴터]에서 우측 오솔길로 올라감)
부흥사를 거쳐 시원하게 확 트인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을 들러보시고..
계속 오르다 보면; 상실절터 유물들을 쌓아놓은 곳도 만나고, 잠시 더 오르다 보면;
위에서 갑자기 금오정 전망대가 우뚝허니 솟아오릅니다 ^^
힘겹게 오른 길이니 요기도 좀 하면서 잠시 쉬시고,
저 아래쪽 민초들의 애환어린 삶들을 잠시 내려다 보십시오..
다시, 잠시 걸어 바로 옆 [서남산 순환도로]로 내려가면;
포석정 공원지킴터에서 도로를 따라 좀 더 쉽게 걸어,
하지만 좀 더 길게 돌아서,, 올라오던 정겨운 사람들과 다시 반갑게 조우하게 됩니다
이제, 함께 손에 손잡고 순환도로를 따라 더 걸어올라,
노인과 소녀의 이룰수 없던 슬픈 사랑의 애환이 새겨져 있는
상사바위 옆을 지나 금오봉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
참고로, 금오정으로 들어서는 입구와 만나기 조금 전 [서남산 순환도로]에서는, 동남산의 통일전
좌측 [철와골]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동남산의 옥룡암 앞에서 시작되는 긴 [동남산 등산로]도 순환도로로 오르기 직전 이 탐방로와 합류함)와
만납니다. 잠시 후, 금오정으로 오르는 입구 바로 직전에는 동남산의 서출지로 내려가는
등산로(중간에 [국사곡] 탐방로로 빠질 수도 있음)와도 만나게 됩니다
░
늠비봉 5층석탑과 금오정 전망대, 상사바위
배실 기암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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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실기암곡] 동삼층석탑의 역사적 유래나 의미는 제가 잘 모릅니다만.. 어쨌건, 가까운 곳이니
을 따라 마냥 올라가봤습니다..
배실 기암곡 삼층석탑
포석정에서 순환도로로 걸어가다 작은 다리를 하나 만나게 됩니다. 다리를 지나서 골짜기로 들어가면;
[가늘골]로 올라가게 되고([황금대 능선]으로 오르는 입구인데, 찾아가기 엄청 어려운 길입니다 ㅡㅡ;),
다리를 건너기 직전은 [배실 기암골]로 가는 골짜기입니다. 여기서 개울을 헤쳐가며 살짝
올라가면(역시, 찾아가기 엄청 어려운 길입니다만 ㅡㅡ;); 기암곡 동삼층석탑으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 동서 짝으로 서 있어야 할 친구인 [서삼층석탑]은 아직 다 찾지못해 차가운 바닥에 마냥 누워 있습니다 ㅡㅡ;
혹은, [지마왕릉]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는 등산로 길을 따라 오르다.. 좌측 [기암골] 골짜기 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어 만날 수도 있습니다.
힘겹게 길을 찾으면서 나아가다 보면(어느 쪽에서 올라오건, 길 찾아가기가 참 어렵습니다 ㅡㅡ;)
이 폐과수원이 나옵니다 - 여기까지 무사히 찾아오셨다면(?) 대성공입니다만.
어쨌건, 이제부터는 우측 아늑한 대숲 길을 따라 올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도중에 꽤 규모가 컸을 듯한 [상실절터]도 나오고.. 길을 따라 한참 걸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여기서는 더 올라가지 못합니다, 아쉽더라도 그만 내려오십시오
- 알지도 못하는 험악한 암벽 길을 더 올라서 황금대 능선까지 한번 올라가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저는 여기서 그만 포기했습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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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삼불사 등산로]를 오르다 누워계신 석조여래입상을 지나 잠시 더 오르다,
살짝 좌측 비탈로 내려가는 길이 희미하게 나 있는데(역시, 입구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ㅡㅡ;)..
제대로 비탈길을 찾아 내려가면; 기암곡 [상실절터] 부근으로 내려갈 수 있고,
이제 길을 따라 오르기만 하면 [기암곡 삼층석탑]으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삼릉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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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포석정 방문자센터에서 주차장 앞에 나 있는 좁은 길로 들어서
[지마왕릉]과 [태진지못], [삼불사] 및 [망월사]를 거쳐
걸어보기로 합니다(잠깐입니다 - 한 25분 정도?)
삼릉 가는길
[포석정 방문자센터]에서.. 사방으로 둘러싼 소나무가 멋지게 늘어져 있는
을 지나, 작은 연못마냥 고요한 운치가 있는 태진지 저수지 벤치에서 잠시 쉬면서 도시락도 까먹고..
이어지는 오솔길 숲을 걸어 잠시 나아가면 삼불사에 이릅니다
삼불사로 들어가면; 해맑게 웃고계시는
세 부처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시는데.. 이렇게 밝은 표정의 부처님들은 첨 봤습니다 ^^
일단은(삼불사 등산로는 나중에 오릅니다), 삼불사 세 부처님들의 웃음을 뒤로 하고,
그 옆 망월사를 지나서 옆쪽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잠시 더 나아가면; 우리의 목적지인 삼릉에 이릅니다
여기에 멋진 소나무 숲으로 유명한, 새벽마다 사진작가들이 찾아와 셔터를 눌러대는
과 ([포석정]에서 후백제 견훤에게 사로잡힌 비운의 왕, 바로 경애왕의 무덤인)
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남간사지]로부터 출발하여 힘겹게(?) 삼릉까지 걸어
왔습니다(머, 대충 1시간도 안되는 짧은 산책로인데 생색내며 자랑까지? 그다지 대단치도 않군요 ^^)
경애왕릉 옆에는
(다시, 도로로 나와서 용장 방향으로 한 100여 미터 걸어서 삼릉정미소 앞 [삿갓골 입구], 혹은 바로 옆 [고향칼국수]에서 동네길로 살짝 더 안쪽으로 올라가서 찾아가야함, 헷갈리면; 동네분께 물어보십시오 ㅡㅡ;)
나머지 아랫 부분들을 찾지못해 아직 똑바로 세워서 복원해주지 못한, 서글픈
부처님도 홀로 외롭게 앉아(?) 계시니, 한번 찾아가 위로해 주십시오
░
포석정에서 삼릉까지 걸어가는 길
용장 가는길
경주 남산의 가장 대표적인 탐방로는 서남산의 서삼릉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삼릉계곡]을 걸어올라
바둑바위(와 상사암), 금오봉을 거닐면서 [용장계곡]으로 걸어내려
용장 주차장에서 마무리짓는, [삼릉에서 용장까지] 꽤 길게 돌아가는
문화유적 답사코스입니다
- 이 탐방로들은 나중에 따로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하기로 합니다
✓
시내 방면에서 버스를 타고 오셨다면; 머 맘대로 오르시고, 중도에
(서남산 방면이든, 동남산 방면이든)원하는 어느 곳으로건 내려가셔서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 단, 남산의 최북단인 [도당터널 올렛길]과 최남단인 [새갓골 주차장]에서는 버스가 없으니 참고하십시오
문제가 되는건, 개인 승용차로 오시는 경우입니다. [서남산 주차장]에 차를 대고(하루 2천원임),
[삼릉계곡]으로 올라 금오봉을 거쳐 [용장계곡]으로 내려가시면; 용장에 도착하여
[용장 주차장](평일은 주차비 꽁짜임) 옆 버스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려 다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ㅡㅡ;
산은 나중에 오르시고.. 일단은, 도로를 따라가며
주변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합니다. [삼릉 탐방지원센터]에서 도로를 따라 잠시 가다보면;
[경주교도소]를 지나자마자 [월성대군단소]가 나오고,
그 옆 [소머리곰탕] 집 좌측이나 우측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면;
바로 금오봉으로 올라가는 [약수골 탐방로]입니다
계속 도로를 따라 나아가 경주국립공원공단 남산분소를 지나면;
[비파골] 입구(버스 승강장 옆)가 나오는데,
여기서 [비파골 탐방로]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약수골]과 [비파골]을 지나치고, 도로를 따라 몇백미터만 더 가면;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용장 주차장에 도달합니다.
용장에서 도로를 따라 계속 나아가면 [천룡사지]로 오르는 [틈수골] 입구가 나오고,
산 옆 도로를 따라 끝까지 계속 돌아가면; '거북의 머리'인 최북단 올렛길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서남산 둘레길]
여정이 '거북의 꼬리'인 새갓골 주차장에서 끝나게 됩니다
➥용장에서 산으로 오르는 길은 금오봉과 고위봉, [이무기 능선]과
[쌍봉 능선], 열반재와 이영재 등 워낙 넓고, 다양한 갈래길들이 있어
나중에 각각 따로 지면을 할애해서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용장 주차장 안에는 세조의 난을 피해 이곳 [용장계곡]에 은거하며 최초의 한문 소설인
를 쓴 생육신
을 기리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한번 들러보세요..
삼릉에서 용장까지
░
경주 남산의 가장 대표적인 탐방로는 서남산의 삼릉에서 출발하여 [삼릉계곡]을 걸어올라
바둑바위(와 상사암), 금오봉을 거닐면서 [용장계곡]으로 걸어내려
용장에서 마무리짓는,
돌아가는 문화유적 답사코스입니다만, 중도에 딴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는 여러 갈래의 탐방로들이 있습니다.
일단, 여기서는 이 여러 갈래의 탐방로들을 개략적으로(만) 소개합니다..
바둑바위에서 삼불사로
삼릉에서 바둑바위(와 상사암)까지만 오르시고자
한다면(사실, [상사암]에서 [금오봉]까지는 그저 거쳐가야만 하는 길일 뿐, 유적지도 시원한 전망도 없는, 꽤나 재미도 없는 구간입니다 ㅡㅡ;);
[삼불사] 방면으로 내려가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한번 오른 길 다시 되돌아 걷기는 좀 아깝고.. 길도 더 짧고 편하고, 또 다른 부처님들도
만나뵐 수 있는
로 내려가시기를 권합니다
✓
[삼불사 주차장](주차비 없음)에서 [서남산 주차장]까지는 몇백미터
지근입니다(물론, 먼저 [삼불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르신 뒤 삼릉으로 내려오셔도 됩니다).
[망월사] 옆쪽으로 난 숲속 오솔길을 따라 잠시만 걸어가면; [삼릉 탐방지원센터]를 거쳐
곧바로 [서남산 주차장]에 도달하게 됩니다
금오봉에서 약수골로
삼릉에서 금오봉까지 올라가야만 한다면; 다시 되돌아오시는 것보다는,
내려가서 또 다른 부처님들과 유적지들을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 이 내려가는 길이 다시 되돌아가는 것에 비해 반에도 못미치는 거리이고,
도로로 내려가서도 한 15분 정도 걸으면; [서남산 주차장]까지 갈 수 있습니다
✓
혹시, 금오봉에서 더 급하게 내려오실 필요가 있다면; 금오봉 바로 밑에 [약수골]과 [작은 냉골]로
갈라지는 갈랫길이 있으니, 여기서 우측의 [작은냉골 능선]을 타고 내려오시면 금방입니다.
눈앞에 장대하게 펼쳐져 있는 [삼릉계곡]의 암벽들을 옆으로 거느린 채, 멋진 전망과 함께 내려가는 길인데,
그저 능선의 맨 꼭대기를 따라 시원하게 걸으면서 다시 원래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금오봉에서 비파곡으로
금오봉 정상에서, [비파골] 방면으로 내려가실 수도 있습니다.
금오봉에서 용장 방면으로 살짝만 내려가면;
[순환도로]와 만나기 직전에 [남산과 망산의 유래] 표지판이 나오는데..
바로 옆에 있는 '넘어가지 마시오' 선을 넘어가는 길이
바로 비파바위와 [불무사지] 및 [석가사지], [비파곡 3층석탑]으로 내려가는
입니다 - 여기서도 또한, 내려가는 도중에 여러 갈림길이 있습니다:
1.
먼저, [불무사지](및 비파바위)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는데, 능선 등산로에서
이 방면으로 내려가는 샛길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삼형제 바위를 지나쳐온 뒤,
옆 사진의 바위를 만나신다면; 그 건너편 쪽을 유심히 살펴보십시오
-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작은 비탈이 이어집니다. 바로 [불무사지]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이제, [불무사지]와 비파바위를 거쳐 [비파골] 입구까지 내려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서남산 주차장]까지 걸어가기는 좀 버겁고, 버스를 기다려야 합니다 ㅡㅡ;)
2.
제대로 길을 찾아서 들어갔다면; 돌 석축 및 기와조각들을 밟으면서 잠시 내려가면 우측은 비파바위로 내려가는 길이고,
좌측의 커다란 바위들(이 곳에 비파암 암자가 있었다고 합니다)의 모퉁이를 돌아서 내려가면;
밑에서 [석가사지]를 찾아오르던 사람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 함께 손잡고 조금 더 올라가면 [석가사지]입니다
3.
또는, 등산로를 따라 조금 더 나아가 [비파곡 3층석탑]으로 내려가서 [비파골] 입구까지
내려가는 길도 있습니다만, 미리 고려하면서 좌측으로 난 작은 갈림길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면;
대개는 마냥 똑바로 나 있는 능선길을 따라걸어 약수골로 내려가게 됩니다(머, 제가 첨에 그랬습니다만 ㅡㅡ;).
물론, 이 또한 신속히 [약수골]로 내려가는, 또 다른 하나의 (우연에 힘입은, 필연적)선택지였습니다 ^^
삼불사에서 바둑바위로
░삼불사에서 출발하여 등산로를 걸어오르면;
올라가게 됩니다만, 잠시 후 삼릉으로 먼저 떠나서 올랐던 친구도 똑같이 이쪽으로 올라와 조우하게 됩니다
- 등산 자체가 목적이라면; 바로 옆 삼릉에서 오르는 길보다 이 삼불사 등산로가 더 짧고 상쾌하게 오르는, 또 훨~ 편한 길입니다 ^^
바둑바위로 오르기
삼불사에서 등산로로 올라보면; 형체만 남은 채 누워계신 부처님,
풍화에 마모되어 간신히 선각만 보이는 부처님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제, 계속 올라가면;
삼릉에서 시작하여 상선암을 거쳐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갈랫길이 나오고,
잠시만 걸어 오르면; 곧바로 신선들의 놀이터였다는 바둑바위입니다
이 곳은 경주시 전체가 눈 앞으로 훤하게 펼쳐지는 멋진 전망대입니다.
이제 잠시 요기도 좀 하시고, 아랫 마을 풍경을 살피면서 좀 쉬신 뒤..
바둑바위 바로 옆 바위들 틈으로 몇 걸음 옮겨보시면;
이 곳은 '백결선생'
가 밤에 올라 거문고를 뜯었다는 금송정 정자가 있었다는 곳입니다.
옥보고는 여기서 바둑 두던 신선들과 교우하다, 나중에는 신선들을 따라 신선이 사는 세상으로
올라갔다고 전해집니다 - 머, 믿거나 말거나 ^^
백결선생은 낭산(狼山) 아래에 살았는데, 집이 매우 가난하였다.
옷을 백번이나 매듭지어 마치 메추라기를 매단 것 같았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동리(東里)의 백결선생이라고 불렀다.
일찍이 영계기(榮啓期)의 사람됨을 본받아, 스스로 뒤를 좇아 거문고를 가지고 무릇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마음에 못마땅한 일들을 모두 거문고로 표현하였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이웃 마을에서 곡식을 찧었다.
그의 아내가 절굿공이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곡식이 있어 찧는데, 우리만 없으니 무엇으로 해를 넘길까?”라고 하였다
백결선생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기를,
“대체로 죽고 사는 것은 명(命)이 있는 것이요, 부귀는 하늘에 달린 것이니, 그것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그것이 가는 것을 좇을 수 없는데, 당신은 어찌 근심하시오? 내가 당신을 위하여 절굿공이 소리를 내어서 위로하겠소”라고 하였다.
이에 거문고를 연주하여 절굿공이 소리를 내었다.
세상에 그것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는데, 이름을 방아타령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백결선생
(
)
░
[삼불사 등산로] 풍경
상사암으로
[금송정] 정자가 있었다는 바위들 틈으로 몇 걸음 옮겨가면; 눈 앞으로 거대한
상사암벽(암벽 아래는 [상선암] 암자가 자리잡고 있음)이 나타납니다.
이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몇분만 나아가면; 곧바로 상사암에 이르고..
여기서 (방금 방문했던)금송정이 위치한 암벽 아래를 바라보면; 거대한
부처님이 참으로 멋진 위치에서 쨘~하며 출현하십니다 - 그야말로 눈이 부신 장관입니다!
저 상사암 아래만 보지 마시고, 등 뒤쪽으로도 고개를 돌려 보시면;
머리 뒤로 거대한 암벽이 떡 버티고 서 있습니다
이 암벽 뒤로 돌아가면, 예전 절터가 있던 곳입니다.
아이 낳기를 빌던 감실과, 남산에서 가장 작은 석불이면서 머리도 방석도 잃어버린,
남산에서 가장 서러운 작은 부처님도 계시는데..
이 곳은 헌강왕 앞에 나타나 '신내림' 춤을 보여준, '남산의 신'인 '상심'이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
발 밑에서 바라본 [마애석가여래좌상] 부처님
삼릉에서 바둑바위로
░
제 친구 중 한넘은 뭔가에 삐져서(?), 지 혼자 삼릉으로 가서 [삼릉계곡] 탐방로를 걸어올라.. 힘겹게
올랐습니다
삼릉에서 바둑바위로
이 길은 삼불사 등산로보다는 더 길고,
수많은 돌계단들을 밟으면서 올라야 하기에 좀 힘들긴 하지만,
대신에 그 고생길을 보상받을 만큼의 볼거리가 훨~ 많긴 합니다 ^^
솔숲을 걸어 그윽한 솔 향기를 맡으며 삼릉(과 바로 옆의 경애왕릉)을 한바퀴 둘러보고,
[삼릉계곡] 탐방로를 따라 올라가기로 합니다..
잠시 오르다 보면; 길 옆에서
이 환하게 웃으시며(? 아직 목은 찾지 못했습니다 ㅡㅡ;) 반갑게 맞이해주십니다
여기서, 목없는 부처님의 왼편으로 돌아 살짝만 올라가면; 또 다른 부처님,
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지는 햇살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이제 소나무 숲길과 돌길을 걸어 더 올라갑니다. 잠시 후, 선각육존불 안내 표지판도 보이고 그 옆 개울을 건너면; 바로
여섯 부처님들입니다
6 존불 부처님들을 뒤로 하고 더 올라볼까요? 다만, 여기서는 경제학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인
선택 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다시 개울로 내려가 일반 등산로를 걸어 올라가느냐?
아니면; 육존불이 새겨진 거대한 바위의 좌측 바위 계단(?)으로 올라가느냐?
어느 길로 가든; 잠시 후에 다시 만나게 됩니다만.. 여기서는 일단,
선각 3 부처님들이 애써 마련해주신 좌측 계단으로 올랐습니다..
공식 등산로보다 더 편하고, 더 아늑하고,, 더 짧고,,, 이 세가지 관점에서 제가 멋대로 '결정'했습니다.
호젓한 숲길을 잠시 더 오르다보면; 공중 부양하고 계시는
부처님이 새겨져 있는 거대한 바위가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습니다.
왼쪽 옆에 자리잡고 있는 괴상한 형태의 바위는 예전에 양반집 귀부인들이 아이 낳기를 기원하며 빌던 남근석 바위고,
그 옆에 붙은 바위는 부부가 서로 껴앉고 있는 모습이라고 해서 부부바위라고 부릅니다 ^^
다만, 이 길은(여기까지는 머, 오로지 한길이니 문제가 없지만, 그 이후 길은)
봄에 수풀이 우거진 상태에서는 제대로 찾아가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 길 잘 못찾아 마냥 위로 올라가면; 삼불사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만날 수도 있습니다(바로 제가 ㅡㅡ;).
어쨌건, 제대로 길을 찾아가면; 이런 곳도 지나고..
혹은, 운 좋으면; 발 밑으로 이렇게 부처님의 흔적을 밟아볼 수도 있습니다(지송 ~). 길 잃지않고 제대로 찾아갔다면;
또 다른 부처님이 저 앞에서 마중하시고 계십니다
비록 [용장계곡]의
부처님과는 달리,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앞만 보고 계시지만,
오늘 그 대단하신 부처님들을 너무 많이 만나고 또 예를 표하게 되는군요 ㅡㅡ;
어쨌건, 길 잃지않고 제대로 찾아오른 모양입니다 ^^
돌아갈 수도 없이 지나쳐야 하는 길이니.. 이제 또 허리가 굽어지더라도, 다시 부처님깨 인사 드려야 합니다 ㅡㅡ;
부처님이 마중하고 계시는군요(정면으로 보이는 오솔길이 우리가 방금 걸어온 길입니다).
이제 옆 개울만 건너면; 공식 등산로를 따라서 (좀 재미없게 ㅡㅡ;)올라온 일행과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 있던 탑은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경주박물관 들어가자마자 옆으로 만나는 작은 동산에 서 있습니다)
이제 개울을 건너 공식 등산로 길로 나왔습니다. 여기서 방금 뵌 석조여래좌상이 보이고,
그 뒤 큰 바위에는 마애선각여래상이 새겨져 있는데, 마모가 심해 여기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 저는 망원경으로 희미하게 봤지만, 폰 카메라 배율을 높이시면 살짝 볼 수 있을겁니다
직접 그 바위 뒤로 올라가봐도 살펴볼 수는 없었습니다(부처님 얼굴 앞이 절벽이라 ㅡㅡ;).
그 바로 옆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으로 이사가셨습니다 ㅡㅡ;
이제 다시 올라갑니다. 한참 돌길을 걷고, 또 한참 목재계단 등을 힘겹게 걸어오르다 보면 상선암에 이르고..
여기에도 부처님이 누워계시는데, 옷자락 한 조각의 크기만도 이 정도이니 생전에는 엄청 거대한
부처님이셨을 듯합니다 ㅡㅡ; 여기서 가파른 비탈길을 잠시만 숨차게 오르면;
쉴만한 벤치도 나오고 표지판도 서 있는데..
그 부근에 '들어가지 마시오' 줄쳐진 곳이 나옵니다
- 줄을 살짝 넘어서 30여미터만 들어가면; 거대한 부처님과 직접 대면할 수 있습니다 ^^
이 선을 넘었든 안 넘었든 간에, 잠시만 더 오르면; 삼불사에서 홀로 올라오던 친구와 만나는 갈림길이 나오고,
함께 손에 손잡고 바로 위 바둑바위(및 금송정)으로 갑니다.
바둑바위에 앉아 식사도 하시고, 광활하게 펼쳐진 경주시 구경도 하시면서,
삼릉에서부터 지금까지 스쳐온 [삼릉계곡]을 잠시 되돌아보십시오..
░
[삼릉계곡] 올라온 길
황금대 능선
░[바람재 능선], [쌍봉 능선]과 함께 이
은 제가 남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원한 능선입니다.
여기서 [봉화대 능선]과 [이무기 능선]이 좀 서운해할 듯도 합니다만
- 머, [봉화대 능선]은 용장, 고위봉, 열암곡, 칠불암, 새갓골 등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갈림길이 너무 많은 탓에
정신 사나워서 잠시 뺐고, [이무기 능선]은 너무 긴데다 힘들고, 약간은(머, 약간만 ㅎㅎ)
무시무시해서 살며시 뺐습니다. 나중에 그쪽들 소개할 때는 한 단계 승급시켜줄 예정입니다 ^^
황금대 능선 오르기
[포석정 공원지킴터] 가기 전 작은 다리를 지난 뒤 우측 [가늘골]로 들어가 [황금대 능선]으로 오르면;
멋진 전망을 감상하면서 바둑바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문제는, 능선 오를 때까지의 길 찾아가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ㅡㅡ;
처음에는 살짝 등산로도 나오지만, 나중에는 암벽들 틈을 헤치며 '길 없는 길'을 올라야
합니다(올라갈 때는 그다지 위험하다고 할 수 없지만, 내려올 때는 좀 위험하기도 하니 [부엉골]에서 오르내리는게 좋습니다)
[포석정 공원지킴터]에서 우측 길로 들어 [부엉골]로 올라가다 보면; 개울 건너편에 살포시 작은 숲길이 드러나는 곳이
있는데(사진에서 보이는 내는 바닥 전체가 거대한 바위 위에 올라앉아 아래쪽으로 거대하게 펼쳐진 곳이라 찾기에 어렵지 않을겁니다),
내를 건너서 이 길로 올라가면 작은 등산로가 나 있어 찾아가기 쉽습니다.
가파르게 오르던 중 우측편에 펼쳐진 거대한 부엉더미도 눈요기로
보시면서(살짝 옆으로 가볼 수는 있지만, 그냥 거대한 바위들입니다) 좀(?) 올라가시면 됩니다
이제 호젓하고 아늑한 오솔길도 걷고, 잠시 세찬 바람을 즐기면서 [황금대 능선]
전망대(발길 닿는 길 그 자체가 전망대입니다 ^^)를
가파르게 오르면 바둑바위에 도달합니다.
바둑바위까지 가는 동안(혹은, 내려오는 동안) 좌, 우로 멋지게 펼쳐진 전망과 함께
아늑한 오솔길을 거쳐 잠시 비탈진 능선과도 싸우면서 나아가는 참으로 시원한 등산로입니다
황금대 능선으로 내려가기
바둑바위에서 [황금대 능선]으로 내려갈 수도 있는데, 올라올 때와는 달리 초입길 찾는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옆 사진은 [바둑바위] 바로 옆 '들어가지 마시오' 줄쳐진 곳입니다 - 모른체 하면서 넘어서면;
호젓한 오솔길과 함께 시원한 전망을 즐길 수 있는 [황금대 능선]으로 내려가는 중일 겁니다 ^^
천천히 내려가시다 보면; 능선의 맨 끝에 도달합니다.
여기서는, 2갈래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우측은 [부엉골]로 내려가서 포석정 [공원지킴터]로 내려가는 길이고,
좌측은 [가늘골] 입구로 내려가는 험한 바위길입니다(기어서 올라올 때와는 달리, 내려가는 길은 좀 위험합니다 ㅡㅡ;)
어느 쪽으로 내려가건, 부엉더미 바로 위 여기가 아래로 내려가는 갈림길이자 아래서 올라와 만나는 곳,
[황금대 능선]의 시작점인데..
여기서는 아래쪽 마을 풍경이 훤하게 펼쳐지니, 굳이 어디로 내려갈지 알려주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만..
일단, 이 좌측 길로 내려가는건 권하지 않습니다 - 위험하기도 하고, 별다른 재미도 없습니다 ㅡㅡ;
내려가시는 중이라면; 이 길로 내려가십시오 - 더 편하고, 안전하며 아늑한 길입니다.
오르셨건, 내려오셨건 간에.. 아래 도로로 가게 되면,
지금까지 오르내린 [황금대 능선]을 한번 올려다 보시면서 스스로 뿌듯해하셔도 됩니다 ^^
전봇대 좌측이 [황금대 능선]의 시작부터 바둑바위(가장 높은 곳)까지입니다.
좌측의 높은 곳이 바로 [황금대 능선]의 시작 지점인 부엉더미이고,
바둑바위 바로 밑 능선은 삼불사에서 오르는 등산로입니다.
전봇대 우측 맨 뒤 봉우리가 금오봉인데(그 앞 능선은 [작은냉골 능선]임),
여기서는 앞에 가려서 나뭇가지만 보이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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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대 능선] 주변 풍경
냉골로 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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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곡]을 오르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만, 예의 그 '들어가지 마시오' 줄이 쳐진 곳입니다 ㅡㅡ;
작은 냉골 오르기
[삼릉계곡]을 오르다 [작은 냉골]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만.. 물론, '들어가지 마시오' 줄이 쳐진 곳이고,
요 선을 넘어가야만 [작은 냉골]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ㅡㅡ;
선을 넘어서자마자 곧바로 위에서 내려오는 [작은 냉골] 계곡이 이어지고, 여기서 좌측편으로
살짝 보이는 비탈길로 오르면(그저 능선의 가장 높은 곳을 찾아서 걸어오르면 됩니다);
멋진 전망을 벗삼아 금오봉 정상까지 신속히 오를 수 있습니다
✓
참고로, 마냥 [작은 냉골]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탑재 유물들 모아놓은 곳을 두어번 만나게 되는데,
적당한 위치에서 바로 좌측 비탈로 올라, 없는 길을 헤쳐가면서 [작은 냉골] 능선으로 갈아탈 수도 있습니다
이 [작은 냉골] 능선으로 올라서면; 좌측으로는 [삼릉계곡] 옆 거대한 암벽들과
[금송정], [상사암], [큰 냉골] 암벽들이 옆으로 함께 걸어오르는 주변 풍경이 장관이고,
또한 앞으로는 갖가지 기암괴석들을 헤치면서 나아가는 길이 너무나도 시원한 등산로입니다
예전 절터의 흔적인 석축들도 좀 밟아가면서, 계속 오르다 보면; [약수골]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고, 몇 걸음 더 오르면
금오봉과 만나게 됩니다 - 이 [작은냉골 능선]이 서남산 방면에서 금오봉으로 오르는 가장 빠른, 숨겨진 길입니다 ^^
✓
[큰 냉골]은 상사암 옆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80도 암벽산이니 바로는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저 암벽들 옆으로 이리저리 돌아가면서 기어서 올라볼 수 있을 뿐, 재미도 없는 곳이니 굳이 오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 이 암벽들 옆에 난 좁은 틈들을 마냥 기어서 올라가야만 하는데..
이 길도 아닌 곳으로도 돌 석축들이 밟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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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냉골] 오르는 길 주변 풍경
약수골 탐방로
░
는 굳이 길을 알려드릴 필요조차도 없고, 그저 들어가는 입구에서 길을 따라
끝까지 오르기만 하면 됩니다(물론, 끝은 금오봉입니다).
도중에 목없는 부처님의 환대를 받은 뒤.. 커다란 바위면에 새겨진, 남산에서 가장 큰
마애불 부처님(마찬가지로, 목을 잃었습니다 ㅡㅡ;)과도 만나게 됩니다..
약수계곡 탐방로
[약수계곡]으로 들어서서 한참 올라가다 보면;
목없는 부처님(이 부처님의 머리는 따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갇혀 계신다고 합니다 ㅡㅡ;)이
점잖게 앉아서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몇 발자욱만 더 올라가면; 곧바로, 참으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부처님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 거대한 부처님도 바로 아래서 뵌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머리가 없군요 - 아직 찾지도 못했습니다 ㅡㅡ;
손도 참 크신 이 부처님의 '거대한 발가락' 앞에 서서 절 한번 드리고, 급경사 비탈길을 따라 힘겹게
조금(먼 길은 아니라 '조금'이지만, 급경사 길이라 사실상 많이 힘든 '기나긴 길'입니다 ㅡㅡ;)
더 오르면; 곧바로 금오봉 정상입니다
금오봉에 올라 잠시 쉬는 김에, 실토하자면;
부처님 발가락(다른쪽 발가락은 찾지 못했습니다 ㅡㅡ;) 옆에 놓인 감귤은 제가,
너무 목이 말라서
- 머, 자비로운 부처님은 그 '큰 손'으로 이미 용서하셨을겁니다 ^^
✓
참고로, 금오봉에 오르기 직전, 바로 밑에서 [삼릉계곡]의 [작은 냉골](및 [큰 냉골])로부터
올라오는 길과 먼저 만나게 됩니다
- 남들은 잘 모르는 길인데, 부처님의 감귤을 훔쳐먹은데 대한 죄송함에서 은밀히 알려드리는겁니다 ^^
비파골 찾아가기
░
[비파계곡]은『삼국유사』에 진신석가 이야기로 전해지는 전설이
깃든 곳인데, 길 찾아가기 꽤 어려운 넓고 깊숙한 계곡입니다. 먼저,
[약수골]에서 금오봉까지, 혹은 [비파골]에서 금오봉까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들러본
지도를 잘 살펴보신 뒤 오르십시오
비파곡으로 오르기
아래 도로 방면에서 [비파골] 입구로 들어선다면; 오르는 도중에 길 좌측 옆으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물이 살짝 고여있는 작은 개울터에서 세수도 하고 손도 좀 씻은 이후.. 앞을 살짝 바라보면,
건너편으로 오르는 작은 비탈길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이제, 이 개울을 건너서 올라가면 됩니다
1.
잠시 후
이 우뚝 솟아오르고, 꾸준히 걸어 오르시면; 금오봉 바로 밑 지점([남산과 망산의 유래] 표지판)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표지판에서 잠시만 위로 걸어 오르시면; 곧바로 금오봉 정상이고,
아래로 살짝만 걸어서 내려가시면; [동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2.
만약 개울을 건너지 않고 똑바로 올라간다면; 거대한 비파바위, 그리고『삼국유사』의
'진신석가' 이야기로 전해지는 불무사지 및 석가사지로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개울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면(중간에 개울을 건너기도 하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가야 하는, 찾아가기에 굉장히 어려운 길입니다 ㅡㅡ;)..
어쨌건, 제대로 찾아갔다면(?); 좌측으로 거대한 암벽이 늘어서 있는 곳을 지나치게 되는데,
살짝 바위 좌측으로 돌아 올라서(밑에서는 비파바위가 안보임 ㅡㅡ;)
힘겹게 잠시 더 오르면(70도 정도의 급경사길임 ㅡㅡ;);
도도하게 밑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비파바위가 눈 앞에 떡~ 하니 나타납니다
계속해서 비파바위 옆 암벽을 밟고 올라가면 불무사지의 흔적들(돌 석축들과 기와 조각들)이
발 밑에 채이고, 조금 더 오르면; [금오봉] 방면에서 내려오는 등산로와 만나게 됩니다..
(참고로, [불무사지] 암자가 있었다는 우측의 큰 바위들을 돌아서 좁은 길로 내려가면;
아래쪽에서 [석가사지]로 찾아 오르던 일행과 만나서 함께 [석가사지]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3.비파바위를 찾아 올라가지 않고, 마냥 똑바로 오르면;
불무사지로 숨어들어간 진신석가를 기리기 위해 경덕왕이 지었다는
가 나타납니다. 석가사지를 지나, 계속 오르면; 깊은 아래 계곡을 아득히 내려다 보면서,
또 멀리 바라보이는 비파바위를 감상하며 더 올라..
마지막엔 거대한 암벽들을 헤집고 또 올라타면서 계속 전진하면; 금오봉 정상 턱 밑에 이릅니다
이제, 오솔길을 따라 위로 잠시 오르면; 금오봉이고, 아래로 몇걸음 내려가면; [남산 순환도로]와 만납니다. 그건 그렇고.. 이 등산로는 좀 위험하니, 저를 따라 오르지는 마십시오.
머, 솔직히는,, 내려갈 때는 좀 위험하지만.. 오를 때는 크게 위험한거 없습니다 - 다만, 암벽들 틈을 헤치면서 길을 올라갈 때는
암벽을 돌아 낭떠러지 계곡 옆 길로 올라가는 경우 잔 자갈 잘못 밟아 미끄러질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차라리, 암벽을 밟고 올라가는게 더 쉽고 안전합니다 ^^
➥
'고지가 바로 저긴데'.. 애써 맨 위까지 올라서, 몇걸음 밑으로 살짝 걸어가면;
[동남산 순환도로]와 만납니다. 여기서부터는, 더 잔소리 안하니 순환도로를 따라..
[서남산](포석정 방면) 쪽으로 올라가든
[동남산](통일전, 서출지 방면) 쪽으로 내려가든 알아서 가십니다
✓
참고로, 여기서 포석정 방향의 호젓한 도로를 100여미터만 걸어가면; 남산에서 유일한 화장실이 있습니다
- 혹여,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나면 곧바로 [남산 국립공원공단]에서 헬기 타고(? 요 바로 밑에 헬기장이 있습니다)
출동하니 꿈도 꾸지 마십시오 ^^
비파골로 내려가기
금오봉 정상에서 용장 방면으로 몇 걸음 내려가면;
[남산과 망산의 유래]를 설명하는 표지판이 나옵니다. 바로 옆에는 '들어가지 마시오' 줄이 쳐져 있는데,
이곳이 바로 [비파골 등산로]로 내려가는 입구입니다 ^^
옆에 쳐진 줄을 넘어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기괴한 모습의 도깨비바위와 거대한 삼형제바위들을 지나치고,
잠시 더 내려가면; 왼쪽 편에 불무사지와 비파바위로 빠지는
(아주 찾기 힘든, '샛길'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작은)'비탈길'(?)도 나옵니다.
일단, 여긴 지나치고(머, 어차피 발견하지 못했을겁니다 ^^), 그냥 똑바로 한참
더 내려가다 보면; 왼쪽으로 빠지는 작은 갈랫길이 나오는데.. 아주 작은 갈랫길이라
그냥 스쳐서 지나칠 가능성이 많습니다(그럴 경우, [약수골]로 내려가게 됩니다 ㅡㅡ;)
만약 제대로 갈랫길을 찾아서 왼쪽 길로 내려갔다면; 잠시 후에 멋진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비파곡 삼층석탑이 나오고,
이제 잠시 더 내려가, 작은 개울을 건너서 밑으로 향하면 [비파골] 입구에 이르게 됩니다.
░
[비파계곡] 둘러보기
➥ 비파골의 전설
효소왕이 친히 가마를 타고 와서 망덕사 낙성회에 공양하였을 때, 한 비구가 있었는데 외양이 남루하였다.
몸을 움츠리고 뜰에 서서 “빈도 또한 재를 보겠습니다”라고 청하자, 왕이 평상의 끝에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장차 재가 끝나려 하니 왕이 그를 희롱하여 “어느 곳에 주석하는가?”라고 묻자,
중이 비파암이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이제 가면 사람들에게 국왕이 친히 공양하는 재에 참석했다고 하지 말라”고 말하니,
중이 웃으면서 “폐하도 역시 사람들에게 진신석가를 공양했다고 하지 마십시오”라고 답하고는
몸을 솟구쳐 하늘에 떠서 남쪽을 향해 날아갔다
왕이 놀라고 부끄럽게 여겨 동쪽 산으로 달려 올라가 그 방향을 향해 멀리서 예를 취하고
그를 찾게 하였는데, 남산 삼성곡이라는 곳에 이르러 바위 위에 지팡이와 바리를 두고 사라졌다고 하였다.
이에 왕이 비파암 밑에 석가사를 세우고, 모습을 감춘 곳에 불무사를 세워 지팡이와 바리를 나누어 두었다.
두 절은 지금도 남아 있으나 지팡이와 바리는 사라졌다
-『삼국유사』, 효소왕이 진신석가를 몰라보다
(
)
지바위골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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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위골 마애불
금오봉 바로 밑 화장실에서 [남산 순환도로]를 걸어 동남산 방향으로 한 100여미터만 가면;
(위 [비파골 오르기] 편에서 끝까지 오른 뒤 [남산 순환도로]로 내려가서 만난, 바로 그)안내 표지판을
만나게 되고 도로 앞 건너편으로 '들어가지 마시오' 작은 길이 살짝 보입니다. 그 길로 잠시만 오르면;
아래쪽에 이런 멋진 소나무와 바위가 보이는 전망대가 나옵니다. 여기서 바위 우측으로 살짝 돌아서 내려가보면;
바위 앞면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고증에 따르면; 선각 마애불이 아니라 불상이라고 합니다.
불상이 맞다면; 그야말로 거대한 부처님이셨을 터인데, 여지껏 모진 세월 엄청난 바람을 견디어 오셨군요 ㅡㅡ;
지금은 희미해진 옷자락 선들만 군데 군데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무 전망좋은 곳에 자리잡은 댓가로, 긴 세월에 걸친 거센 바람을 견디지 못해 조각 선들조차 거의 다 사라지고 말았군요 ㅡㅡ;
✓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동남산 순환도로] 길과 함께 [국사곡]과 [지암곡] 전체가
훤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 아마도, 당장이라도 바로 밑으로 내려가보고 싶으시겠지만..
이 아래는 절벽입니다 ㅡㅡ;
(저는 [지암곡]에서 여기로 바위들을 타면서 올라와봤지만,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 내려가는건 더 위험하니 포기하십시오 ㅡㅡ;)
용장사지 탐방로
░
이제 드디어 용장에서 깊은 [용장계곡]으로 오를 것인데, 이
은 꽤 길게 걸어올라 [동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되고, 여기서는 금오봉으로 오르거나,
혹은 [동남산 공원지킴터]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용장사지로 오르기
일단, [용장 공원지킴터]에서 출발합니다.
정면의 나무 다리를 건너면; [용장골]로 들어가 설잠교를 건너 용장곡 [용장사지]로
오르게 됩니다(우측 시멘트 도로는 [천우사], [관음사]를 거쳐 [열반재]로 올라 고위봉 정상 또는 [천룡사지]로 가는 길입니다)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안내 간판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찾아가야 뵐 수 없고, [경주국립박물관]에 들르시면 만나뵐 수 있습니다
계속 오르다보면; 목 축이며 가라고 마련해둔 작은 약수터(?)도 나옵니다.
목 좀 축이고, 잠시 오르면; 또 다른 [절골 약사여래좌상] 안내판도 나옵니다.
[절골]을 들러보려면; 안내판 뒤로 돌아 올라가시면 됩니다 - 그리 길지 않으니 한번 찾아가 보십시오..
안내판 뒤로 돌아 계곡을 따라 한참 올라가다 보면; 절터의 흔적과 흩어진 유물들이 나오고,
맨 마지막에는 이 부처님이 출현하십니다.
석두는 없고, 이 부처님이 올라앉아 계셨을 대좌는 100m 밑 깊은 땅속에 묻혀있다고 합니다 ㅡㅡ;
올라가는 내내 물이 참 많이 흐릅니다. [용장 계곡]이 남산에서 가장 깊고 긴 계곡이다보니
남산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일년 내내 물이 흐릅니다
다시 길을 따라 한~참(한~참 ㅡㅡ;) 걸어가면, [용장사지]로 오르는 설잠교와
만납니다(다리를 건너지 않고 똑바로 직진하면; [이영재 갈림길]이나 고위봉 바로 밑 산정호수로 올라가게됨).
머, 고지가 바로 저긴데,, 다리를 건너 계속 올라가야겠지요?
다시, 김시습이 기거하면서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썼다는
및 관련된 유물 유적들과 뒤엉키면서.. 한~참 오르다보면; 그야말로 멋진 부처님이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바로, 대현 스님이 염불을 하며 돌 때마다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는 신비한 부처님,
입니다
유가종의 개조 대현(大賢)은 남산(南山) 용장사에 거하였다.
절에 미륵석조장육상이 있었는데 대현이 항상 그 둘레를 돌면 불상 또한 대현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삼국유사』, 현유가해화엄
(
)
하지만, 석조여래좌상을 돌아 오르자마자, 곧바로 '니만 있냐? 나도 있다' 하며 나서는
님이 기다리고 계시는군요. 머, 아무리 살펴봐도 더 멋지지는 않은 듯한데(ㅡㅡ;)..
어쩌면 더 심오한 뜻을 품고 계시는 분일지도 모릅니다만(^^),
부처님간 싸움에 한낱 중생이 어찌 감히 끼어들겠습니까?
➥ 고승 '썰전' 이야기
머, 부처님들만은 아니고, 덕이 높다는 고승들도 역시 '내가 낫니, 니가 몬하니' 하면서
시정 잡배들 마냥 지만 잘난척 자화자찬들 하는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만..
이게 바로 인간 사는 세상입니다 ^^
경덕왕 때 여름에 크게 가뭄이 들어 조서를 내려 대현을 궁궐로 들어오게 하여 ≪금광경≫을 강론하여서 단비가 내리기를 기도하게 하였다
어느 날 재를 올리는데 바리를 늘어놓고 잠시 있었으나 정수(淨水)를 바치는 것이 늦어지자 감리가 그것을 꾸짖었다.
공양하는 사람이 말하였다. “궁궐의 우물이 말라서 먼 곳에서 길어왔기 때문에 늦어졌습니다”
대현이 그 말을 듣고 말하였다. “어찌 일찍 말하지 않았는가?”
- 낮에 강론할 때에 이르러 향로를 들고 말없이 있으니,
잠깐 동안 우물의 물이 솟아 나와 그 높이가 7장(丈) 가량이 되어 찰당(刹幢)과 더불어 같게 되었는데,
궁 전체가 놀랐고 그로 인하여 그 우물을 금광정(金光井)이라 이름하였다
-『삼국유사』, 현유가해화엄
(
)
다음해 갑오년 여름에 왕이 또 대덕 법해(法海)를 황룡사에 청해 ≪화엄경≫을 강론하게 하고,
가마를 타고 행차하여 향을 피우고 조용히 일러 말하였다.
“지난 여름에 대현법사가 ≪금광경≫을 강론하여 우물의 물이 7장이나 솟아나왔다.
당신의 법도(法道)는 어떠한가?” 법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것은 특히 조그만 일이니 어찌 칭찬하기 족하겠습니까. 바로 창해(滄海)를 기울여서 동악을 잠기게 하고 경사(京師)를 떠내려가게 하는 것도 또한 어려운 바가 아닙니다” 라고 하였다.
왕은 그것을 믿지 않고 농담으로 여겼을 뿐이다
오시(午時)에 강론을 하는데 향로를 끌어놓고 고요히 있으니,
잠깐 사이에 궁중에서 갑자기 우는 소리가 나고, 궁리가 달려와서 보고하였다.
“동쪽 연못이 이미 넘쳐서 내전 50여 칸이 떠내려갔습니다” 왕이 망연자실하니, 법해가 웃으며 말하기를
“동해가 기울고자 하여 수맥(水脈)이 먼저 넘친 것뿐입니다”라고 하였다
- 다음날 감은사에서 아뢰기를 “어제 오시(午時)에 바닷물이 넘쳐서 불전의 섬돌 앞까지 이르렀다가 저녁 무렵에 물러났습니다” 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현유가해화엄
(
)
아무래도, 저 한심한 분들 다툼에 끼어들어봤자 얻을만한 삶의 교훈 같은거 하나도 챙길 수 없을듯 하니,
저분들 사정은 못본체 하면서.. '고지가 바로 저긴데' 계속 올라가기로 합니다.
잠시 오르자마자 금새, 작지만 거대한
이 우뚝 눈 앞으로 솟아 오릅니다! 이 삼층석탑이 내려다보고 있는 맨 앞의 작은 두 봉우리는
고위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쌍봉이고, 맨 위 높은 봉우리는 고위봉 정상,
고위산에서 내려오는 우측의 산맥(?)은 그 무시무시한 [이무기 능선]입니다
- 생긴 모습만 아니라 오르는 등산로도 참으로 길고 험난합니다 ㅡㅡ;
이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주변의 모든 능선과 골짜기 어느 곳에서든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조성된,
고위산 주변을 다니던 우리 옛 민초들의 앞을 인도해준 부처님의 등대입니다 - 그래서 '작지만, 거대한' 석탑입니다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이런 거대하고 기괴한 고래(?) 바위도 옆에서 함께 날아(?) 올라가고 있고,
잠시 더 오르면; 금오봉에서 내려오는 [동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덧붙이자면; 저 거대한 '고래'(?) 바위 사진은 사실, [용장계곡]을 오르면서 찍은 사진은 아니고,,
그 아래 거대한 암벽을 타고 기어 올라온 뒤에 한숨 쉬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
원래 의도는 [용장계곡]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가장 험한 곳(삼화령 밑 절벽 - 혹시나 삼화령에서 굴러떨어진 부처님 옷자락 조각이라도 하나 찾을수 있을까 해서 ^^)을
향해 올라가려던 것이 목표였는데.. 워낙 깊고 올라가기 힘든 어두침침한 곳이라 길을 잘못 들어 이쪽으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이 사진의 앞쪽 중앙에, 멋지게 자리잡고 앉아 비웃고 있는 삼화령 연화대좌가 보이는군요 ㅡㅡ;
░
[용장계곡] 오르기
삼화령과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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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용장계곡] 끝까지 올라 [남산 순환도로]를 만나서 잠시 걸어오르면;
급하게 찾던 화장실도 나오고 금오봉으로 오를 수도 있습니다만..
그 전에, 순환도로와 만나서 잠시 아래로 걸어내려가(동남산 방향)
올라보십시오
삼화령과 비석대
아마도 남산에서 가장 큰 여래좌상 부처님이 앉아계셨을 삼화령 연화대좌에 올라
'야~호' 하며 한번 외쳐보시고.. 저 깊은 [용장계곡]과 쌍봉, [이무기 능선],
고위봉이 어울려 빚어내는 장대한 풍경을 관망해보십시오
사진의 우측으로 보이는 능선은 [용장사지]로 오르는 능선이고, 발 밑으로는 [남산 순환도로]가 지나고 있습니다.
순환도로 아래는 남산에서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실은 제가 밟아보지 못한 ㅡㅡ;)가장 깊은 계곡이고,
앞에 보이는 낙타등은 쌍봉 능선입니다(이 능선은 고위봉 정상으로 이어집니다).
그 뒤 제일 높은 넘은, 당연히 고위봉이고,
거기서 내려오는 산맥(?)은 이름부터가 무시무시한 [이무기 능선]입니다.
우측 맨 끝 봉우리는 [열반재 갈림길]에서 올라갈 수는 있는데, 별로 유명하지 않으니, 신경 끄셔도 됩니다 ^^
✓ 삼화령 곁에 있는 비석대를 들른 뒤, 기왕 왔는데.. 이 길도 한번 내려가 보자 하면서,
그대로 그냥 [비석대] 아래 비탈길로 미끄러져 내려가며 찍어본 [용장사지 능선] 사진인데..
어떻게 저 암벽들을 뚫고 올랐는지 지금도 신기합니다. 더 신기한건, 저 암벽 바로 밑 80도 비탈에도,
지금 걸어 내려가는 이 70도 비탈에도 돌 석축들이 곳곳에서 밟힙니다
- 신라 시절 남산에 절이 대체 몇개나 있었을 지 상상도 안갑니다 ㅡㅡ;
그 '거대한' 고래바위도 여기서 보니 정말 작군요, 왼쪽 끝 가운데 쬐~끄맣게 올라앉은 넘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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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령]의 [연화대좌]와 [비석대]
- 참고로, 충담 스님이 차를 다려 올린 곳이 [장창곡]의 전삼화령인지, 이 삼화령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왕이 묻기를, “그대는 누구요?”라고 하니, 승려가 대답하기를, “충담(忠談)이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묻기를, “어디서 오시오?”라고 하니, 승려가 대답하기를,
“소승은 3월 3일(重三)과 9월 9일(重九)에는 남산(南山) 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彌勒世尊)에게 차를 다려 공양하는데, 지금도 차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고 하였다
-『삼국유사』,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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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로 오르기
제 친구 한명은 저와 함께 설잠교를 건너 [용장사지]로 오르지 않고,
(먼 불만인지?)똑바로 [이영재]로 올랐습니다.
[용장계곡]에서 설잠교를 건너면; [용장사지]로 올라가게 됩니다만,
다리를 건너지 않고 계속 직진하면 [이영재]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영재 갈림길]에서 우측 가파른 능선은 남산의 끝자락인 [새갓골]까지 갈 수 있는,
깊디깊은 [용장 계곡]과 [칠불암 오르는 길]을 좌우로 전망하면서 아주 길게 걸어가는,
시원한 [봉화대 능선]의 시작 지점입니다
반대로, 좌측 목재 계단으로 올라가면; 잠시 후 [동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힘차게 계단을 올라, 앞으로 잠시 나아가니, 동남산에서 올라오는 [동남산 순환도로]가
옆에서 함께 걸어오르고 있군요 ^^
이제, [동남산 순환도로]로 나가서 잠시만
오작교([남산 순환도로])를 건너면;
곧바로 삼화령 바로 밑에서 스쳐가는 순환도로입니다. 다행히도, 이 순환도로가 견우 직녀
가 되어주었군요 ^^
➥[남산 순환도로]는 남산 등반의 이정표입니다. 고위봉 주변 등산로를 제외한
모든 탐방로는, 어디에서 오르건 간에 금오봉을 꼭지점으로 하는 [서남산 순환도로]
및 [동남산 순환도로]를 거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 그래서, 별 재미도 없는
밋밋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남산 등반의 등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산정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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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계곡]을 오르는 동안, 항시 옆에서 노려보고 있던 [쌍봉 능선]과 [이무기 능선], 그리고
이 무시무시한 두 능선을 아래로 길게 늘여 거느리고 있는 고위봉을 모른체 지나칠 수는 없군요.
이제 고위봉으로 오르는 길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먼저, 가장 쉬운 길인
올라보기로 합니다
산정호수로 오르기
[설잠교]를 지나쳐 이영재로 오르다 보면;
[이영재 갈림길]까지 가기 조금 전에 우측으로 갈림길이 하나 나옵니다. 이 길로 들어서
호젓한 대나무숲 길을 헤치며 얼마간 걸어오르다 보면(제 KT폰이 터지지 않는 유일한 영역입니다 ㅡㅡ;);
고위봉 바로 밑에 있는 산정호수에 다다릅니다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산정호수가 앞에서 살포시 모습을 드러내주고 있군요 ^^
무사히 [산정호수]까지 찾아왔으니, 이제 한숨 돌리시고 고위봉의 정기를 받은 산정호수의 물로
땀도 좀 닦고, 간단히 요기도 하십시오. 좀 쉬셨으면;
[봉화대 능선] 길 바로 밑에 또아리고 앉아, 멀리 고위봉을 올려다보고 있는
도 한번 들러보십시오. 호수 앞에 표지판이 있으니 올라가는 방향은 단순한데..
다만, 그 호젓한 오솔길만 따라 생각없이 마냥 올라간다면;
[봉화대 능선]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게 됩니다(다시 내려오세요 ㅡㅡ;).
그 전에 중간쯤에서 우측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 그리 길지 않은 짤막한 길이니, 중간에서 적당히 참작하여 길을 찾아 들어가시면 됩니다.
다시 내려와서 산정호수에서 좀 쉬시고, 위로 살짝만 올라가면; [백운재 갈림길]입니다
➥[백운재 갈림길]에서는 좌측으로 올라 [봉화대 능선]에 올라타거나,
우측 [고위 능선]으로 올라 고위봉으로 오를 수도 있습니다.
약간은 편법이지만, 여기서 예의 그, '들어가지 마시오' 줄을 넘어 [백운암]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머, 반칙이긴 하지만..
이 길은 참으로 호젓한, 스님들만이 걸을만한 아늑한 오솔길입니다(스님들만의 산책로라 더 이상은 알려드리지 않습니다 ㅡㅡ;)
➥ 산정호수와 영지못
산정호수는 고위봉 바로 밑에 자리잡고서 [봉화대 능선]을 비추어주고 있는
꽤 멋진 호수입니다
- 불국사의 [다보탑]을 비추고 있는([석가탑]은 못비춘다고 합니다 - 그래서 석가탑을 그림자가 없는 탑, [무영탑]이라고 합니다)
영지못에 얽힌 애틋하고 간절한, 슬픈 사랑이 담긴
아사달 아사녀 이야기
에는 거리상으로는 많이 못미칩니다만..
✓
이건 여담이지만, 저는 아마도 당시에는 영지못에
[다보탑]([석가탑]은? 머, 무영탑이니까 ㅎ)이 실제로 비추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라 시절, '구름을 삼키고 토해내는 산'이라고 하던 토함산은 지금도 맑은 날엔
영지못에 비칩니다. [다보탑]까지 비쳤을 지는 의문이지만.. 머, 믿거나 말거나 ^^
쌍봉능선 오르기
░[쌍봉 능선]은 [설잠교]를 지나 [이영재]로 오르다 만나는 첫번째 갈림길에서 오를 수도 있고,
또는, [용장골]에서 오르다 [설잠교]까지 가기 전에 곧바로 능선의 시작 지점부터 올라탈 수 있는 길도 있습니다
이영재에서 쌍봉으로 오르기
설잠교에서 이영재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맨 처음 이 표지판과 마주치게
됩니다(산정호수는 다음번 만나는 갈림길에서 올라감).
여기서, 우측 내를 건너 한참 동안 호젓한 대나무숲 오솔길을 걸어(걷는 길 좌측은 산정호수와 붙은 능선이고, 우측이 [쌍봉 능선]입니다),
올라탈 수 있는 곳이 나옵니다. 제대로 찾았다면(올라갈 길 찾기는 매우 쉽습니다만?);
처음에 대나무숲 속을 걸을 때는 우측의 계곡이 넓어 [쌍봉 능선]으로 오를 곳이 없으니,
대나무의 향기를 맡으며 계속 올라가다 보면; 점차 계곡이 사라지고 좁은 내로 변합니다(오르는 내내 물은 없음).
그 때쯤 우측 능선으로 오를만한 곳이 보일겁니다. 이제 좁은 내를 건너 우측 능선으로 올라갈 수 있는 아주 짧은 비탈길만
오르면; 곧바로 바위 틈을 헤쳐가며 고위봉으로 오르거나 혹은 호젓한 산책로를 걸어 쌍봉으로 내려가는
낙타의 등에 올라타신 겁니다 ^^
반대로, [쌍봉 능선]을 걷다가 이곳으로 내려오고자 한다면;
(방금 전, 아래서 올라와 만난 곳입니다만)바로
여기서(사실, 계곡으로 내려갈만한 곳이 오직 한곳 뿐이라서, 내려갈만한 곳만 살피면 됩니다 ^^)
비탈을 내려가 좁은 내를 건너면 지금까지 올라온 길로 내려가게 됩니다..
한편, (고위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아닌)쌍봉으로 내려가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면;
잠시 걸어 김시습이 [용장사]로 거처를 옮기기 전 은거하며 [금오신화]를 썼다는 은적암으로 내려가볼 수도 있습니다.
이 길의 좌측으로 보이는 비탈로 내려가는데.. 비스무리한 길이 많고, 무슨 표지판이 있는 것도 아니라
이 길을 발견하는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ㅡㅡ; 어쨌건, 제대로 찾아서 내려갔다면;
대나무숲을 헤치며 잠시 구비구비 돌아 걸어가다 보면, 떡하니 은적암 터가 나타납니다만..
✓
아쉽게도 남산의 명당 자리는 언제나 무덤이 먼저 잽싸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
여기서 바로 [은적골]로 내려가 길게 돌아걸어, 이런저런 유물 유적지들도 좀 만나보면서
[용장계곡]으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만, 이 [은적골] 자체가 남산에서 가장 길고 깊은 계곡이라
몇번의 작은 계곡들을 넘으면서 아주 길게 걸어서 내려가야만 합니다
- 너무 깊디 깊은 곳이라 찾아 내려가기에 그다지 재미는 없는 길입니다 ㅡㅡ;
용장골에서 쌍봉으로 오르기
[용장계곡]을 오르다 이 [매월당 김시습] 표지판을 본다면; 이곳이 바로 은적암을 찾아가는,
또한 [쌍봉 능선]으로
입니다. 뒤편의 '들어가지 마시오' 줄을 넘고 내를 건너서..
똑바로 오르는 계곡은 은적암을 찾아가는 길이고(다수의 작은 계곡들을 여러번 건너면서 구비구비 돌아서 올라가야 하는, 굉장히 길고 난해한 길입니다 ㅡㅡ;),
좌측은 쌍봉으로 오르는 비탈인데,
마지막에는 험난한 암벽들을 헤치며 또 밟으며 기어 올라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입니다 ㅡㅡ;
[은적골]로 가는 길은 너무 길고, 지루하고, 난해하니 포기하고..
곧바로 [쌍봉 능선]으로 오르기로 합니다
처음 올라갈 때는 가장 높은 곳만 찾아가며 걸으면 되니 길 찾아가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중간에 절터였던 듯한 곳도 만나고, 한참 올라가다 보면; 이제 본격적으로 거대한 암벽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암벽들을 피해 좌측 좁은 길로 돌아서면; 시원한 전망은 좋지만,
좀 더 길게 호젓한 산길을 걸어서 돌아가는 길입니다
- 거대한 암벽의 옆으로 살짝 돌아가는, 잠시간이지만 1~2m 폭의 좁은 길을 거쳐야 하니 조심해서 지나가십시오
반면, 곧바로 암벽을 타고 힘겹게 오르면; 좀 더 빨리 쌍봉 정상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직접 오르는 암벽길은, [이무기 능선]에서 볼 때와는 달리, 그리 위험한 길은 아닙니다).
힘겹게 오르되, 더 빠른 경로인 암벽들과 싸우며 한참 기어오르다 보니 쌍봉 봉우리가 불쑥 머리를 내미는군요 ^^
잠시 쉰 뒤, 다시 다음번 봉우리로 나아가기로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아늑하고 호젓한 숲속 오솔길입니다. 다음번 봉우리도 거치고,
나아가다 보면; 우측 편으로 잠시 [은적암]으로 내려가볼 수 있는 작은 샛길 흔적도 만나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다 보면; 좌측 편으로 이영재로 내려갈 수 있는 짧은 비탈길도 만납니다.
오르는 도중에, 아마도 예전에 절에서 깃대를 꽂아 두었을 이런 곳도 지나고..
계속해서, '고위봉이 바로 저긴데' 하며 올라가다 보면; 옆으로 그 무시무시한
[이무기 능선]의 머리가 아가리를 떡 벌린 채 하늘로 승천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만..
머, 예까지 날라오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곁눈질로 감시하면서, 거대한 바위들 틈을 헤치며 좀 더 올라가다 보니..
고위봉 밑 작은 헬기장이 반갑게 손을 내밀고(이무기 능선과 쌍봉 능선의 갈림길임),
어느새 고위봉 정상에 도달했군요.
이 날이 1월 19일 엄동설한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참으로 따사로운 햇살입니다 ^^
이제, 어느 길로 내려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오늘은 쌍봉 암벽을 타느라 힘이 많이 들었으니,
가장 가까운 길을 택하여 내려가기로 하겠습니다. [이무기 능선]을 내려가다 보면;
이런 작은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고서 나아갈 길을 선택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좌측 길로 내려가면; [관음사] 뒤쪽 아늑하고 호젓한 능선길을 걸어 신속하게
[천우사] 방면으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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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 능선] 풍경
이무기능선 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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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용장에서 고위봉으로 오르는 기본 코스인
을 걸어(?) 고위봉으로 올라가보기로 합니다
이무기 등에 올라타기
[용장 공원지킴터]의 목재 다리를 건너 [용장계곡]으로 잠시 오르다 보면; 이런 간판이 나옵니다.
이 내를 건너 [천우사] 방면으로 살짝만 걸으면; [이무기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옵니다([천우사] 옆 화장실 뒤 개울을 건너서 올라갈 수도 있음). 기왕지사 나선 길,
튼튼한 두 다리(와 두 팔도?)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 무시무시하다는 이무기의 등에 한번 올라타보기로 합니다..
결심하셨다면; 이제부터는 이무기 등에 올라탄 채 마냥 바위를 넘고, 하늘에서 내려준 밧줄도 타 보시고,
또 이무기 등 비늘 바위들 위를 아슬아슬 걸어서 고위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기나긴 1.7Km의 강행군입니다 ㅡㅡ;
일단은, 재미있는 밧줄타기 놀이부터 한번 해보시고.. 계속 오르기로 합니다
먼저, [쌍봉 능선]에서 고위봉으로 오르다 살펴본 [이무기 능선]의 흉측한 중간 부분 모습을
먼저 보여드리니(우측 깊숙한 골이 바로, 남산에서 가장 긴 골짜기인 [은적골]입니다),
포기하시려면; 지금 하십시오 - 일단 오르기 시작하면, 중도에 후퇴는 없습니다!
참고로, 능선길은 오르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들고, 나아가 위험합니다 ㅡㅡ;
✓
옆 사진은 포악한 [이무기 능선]을 오르며 찍어본, 좀 더 온화한 성품의 [열반재 능선]입니다.
제가 첨 남산 등반을 시작했을 때, 먼저 삼릉에서 금오봉을 거쳐 용장으로 내려가는
제1번 문화유적 답사지를 걷고, 세번째 쯤 이 [이무기 능선]을 선택했는데, 무섭다는 말은 들어서
(내려오는 것이 좀 쉽지 않을까? 딴에는 머리 좀 써본다고 ^^)용장에서 열반재로 올라
고위봉을 거쳐 [이무기 능선]으로 내려오는 길을 선택했는데.. 결과는?
다음 등반 때부터 몇개월간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다녔다는 아픈 전설이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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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 능선] 풍경
열반재와 범굴 탐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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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 공원지킴터]에서 우측 시멘트 도로는 [천우사]와 [관음사]를 거쳐 열반재로 올라가는 길인데,
[열반재 갈림길]에서는 고위봉으로 오르거나, 혹은 [천룡사지]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열반재로 오르기
이제,
고위봉으로 올라가보기로 합니다. [천우사] 옆 도로를 걸어 잠시 올라가다
좌측 개울 건너편을 보면 넓직하고 평평한 바위가 살짝 보이는데,
바로 '열반재의 전설'이 만들어진 바위입니다. 먼 얘기인고?
한 고관댁 처녀가 뭇 남자들이 유혹하는 혼잡한 속세를 등지고 부처님의 세상인
로 들어가기 위해 이 바위 위에서 잿빛 옷으로 갈아입고(= 모든 욕망과 번뇌를 벗어던지고),
부처님을 찾아나서던 중 수많은 숫 짐승들이 처녀를 유혹하며 쫓아오고 가로막았지만..
결국에는, 지옥세계의 중생들을 구원해주신다는
할머니([할미바위])를 만나 열반재를 넘어 부처님이 계시는 천룡사로 갈 수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물론, 우리는 아쉽게도, [열반재 갈림길]에서 [고위봉] 방향으로 올라야 합니다 ㅡㅡ;).
이 거대한 [곰바위]도 그 나쁜 짐승넘들 중 하나입니다만, 이 계곡은 짐승들의 모습을 한 거대한
바위들(너무 많아 여기 다 적지 않습니다. 나중에 직접 한번 올라가서 만나보십시오 ㅡㅡ;)로 가득찬
무서운 '지옥세계'입니다 ^^
✓ [이무기 능선]을 내려오면서 열반재 방면 능선으로 멀리 바라보이는,
큰 바위 위에 기괴하게 올라앉은 [똥바위]도 있습니다(이넘은 고위봉에서 [열반재]로 내려오다, 중간에 [관음사] 방향으로 이리저리 좌우로 비탈을 내려가며 수색해서 결국 찾았습니다 ^^).
처녀가 이곳에서 똥을 누고(= 모든 번뇌의 남은 찌꺼기마저도 다 내보내고),
지장보살(= 할미바위)을 만나 열반세계(= 천룡사)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 그래서 열반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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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처녀를 쫓아온 나쁜 짐승넘들 모습을 약간만 담았습니다.
나머지 넘들은 직접 찾아가서 단죄해 주십시오 ^^
범굴에서 고위봉으로 오르기
여기서는, [천우사] 부근 화장실 뒤로 돌아
[이무기 능선] 중간쯤과 합류하여 고위봉으로 올라보기로 합니다.
[천우사] 화장실 뒤로 돌아 작은 내를 건너면; [이무기 능선]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그냥 골짜기를 따라 [천우사] 뒤편으로 잠시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이런 비탈길이 보이고, 올라가면..
예전에 범이 살았던(?), 꽤 큰 [범굴]이 나옵니다 - 머, 지금은 무속인들의 놀이터로 변했습니다만 ㅡㅡ;
이곳을 지나 거대한 바위들을 헤치며 위쪽으로 계속 오르면,
오르는 길 우측 비탈들은 다 그 나쁜 짐승들이 아우성대며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입니다 ^^
하지만, 옆에서 노려보는 온갖 짐승들은 모른체 하고, 계속 바위들을 헤치며 능선길을 오르다 보면..
한참 아늑한 숲속 오솔길을 걸어 [이무기 능선]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게 됩니다.
이 등산로는 용장 방면에서 고위봉으로 올라가는 가장 빠르고 편안한 길입니다
- 단, 우측 비탈로 내려가면 온갖 짐승같은 넘들이 좌우에서 달려드니 그냥 눈 딱 감고, 똑바로 직진하십시오 ^^
✓
참고로, [범굴]을 못본 체하고, 똑바로 계곡을 따라 오르면; 머리만 남은 탑재 유물들을 쌓아놓은 곳도 나오고..
그 위쪽에는 동경의 지리와 경주 지방에 전해지는 신라의 역사,
설화, 전설, 기담 등을 담은 고서인
에서 묘사되었다는, "옆으로 누운 비파바위"라는 말만 믿고, 몇번을 찾아가고..
하다 하다, 나중에는 [이무기 능선]에서 내려오다 비슷한 위치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두어번
비탈길 타고 낙하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 제가 남산을 다니면서 찾기를 포기한 유일한 곳입니다 ㅡㅡ;
천룡사지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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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용장이 아니라)[틈수골]에서 [천룡사지]로 오른 뒤, 천룡재나 백운재를 거쳐
고위봉까지 올라가보기로 합니다
천룡사지로 오르기
용장을 지나 도로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틈수골] 입구에서 똑바로 걸어오르면; 작은 저수지가 하나 나오는데,
이곳을 지나서 계속 오르면; 잠시 후 와룡사가 나오고(지금은 와룡사를 거치지 않고, 옆으로 난 탐방로를 걸어 올라가셔도 됩니다),
이 길게 이어집니다
최근에 [천룡사지]로 오르는 길을 새로 정비하면서 오르는 길도 좀 변경되고,
목재 계단도 만들고, 안내판도 잘 만들어놔서 [와룡사] 옆길로 지나지 않고도 올라갈 수 있도록 해서
길 찾아가기 및 올라가기는 많이 편해졌습니다만..
그래도 조선시대 후기 이 사찰에 들러 묵은 많은 지사들의 이야기가 아직도 전해지고,
일제시대에 찍은 사진([국립 중앙박물관] 소장)에도 나오는 유서깊은 사찰이니
한번 들러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한참 걸어 오르다 보면; 어느새 이 높은 산중에서 사람들이 사는 마을도 있고, [녹원정사]라는 꽤 큰 식당도 있는,,
탁 트인 거대한 평지가 눈 앞에 훤~하게 나타납니다. 물론, 당연히 이곳에
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천룡사지 삼층석탑은 위로는 고위봉을 배경으로 삼고서,
밑으로는 저 밑 고뇌에 찬 인간 세상을 고고하게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 지역 마을(이 높은 고지에, 진짜로 사람사는 '마을'이 있습니다!)과 사방 팔방 모두가 [천룡사지]인데,
주변을 잠시만 걸어보면; 이 곳에 얼마나 거대한 사찰이 자리잡고 있었는 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 주변 동네와 집, 무덤들 옆, 저수지 부근까지.. 어느 곳이나, 발에 차이는 어떤 것들이나,, 온통 다 유물들 투성이입니다 ^^
➥ 천룡사 이야기
동도(東都)의 남산(南山) 남쪽에 한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데, 세상에서는 고위산(高位山)이라고 한다.
그 산의 양지쪽에 절이 있는데, 속칭 고사(高寺) 혹은 천룡사(天龍寺)라고도 한다
계림(鷄林)의 땅에는 객수(客水) 두 줄기와 역수(逆水) 한 줄기가 있는데,
그 역수와 객수의 두 근원이 천재(天災)를 진압하지 못하면 천룡사가 뒤집혀 무너지는 재앙에 이른다.
역수는 고을의 남쪽 마등오촌(馬等烏村) 남쪽으로 흐르는 내가 이것이며, 이 물의 근원이 천룡사에 이른다.
중국 사신 악붕귀(樂鵬龜)가 와서 보고 말하기를, “이 절을 파괴하면 며칠 안에 나라가 망할 것이다”고 하였다
-『삼국유사』, 천룡사
(
)
고위봉으로 오르기
1.[천룡사지] 삼층석탑 뒤로 돌아서 길을 따라 (옆 표지판의 '틈수골 입구' 방향으로)잠시 나아가면
열반재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여기서 그냥 임도를 따라 똑바로 내려가면; [틈수골] 입구로 다시 내려감).
[열반재 갈림길]로 오르면; 용장 방향으로 내려가거나, 또는 그다지 길지 않은 능선을 걸어
올라갈 수 있습니다
2.
한편, 위 표지판에서 우측 길로 올라서서(위 표지판의 '새갓골 주차장' 방향) 아담하게 자리잡은
[천룡사] 암자를 지나 [천룡재 갈림길]까지 잠시 가파르게 오르면; 백운암 들어서는 입구 직전,
좌측으로 예의 그, '들어가지 마시오' 줄 쳐진 곳이 있으니(옆 표지판의 정중앙 방향),
이 선을 넘어 오르면; 그리 길지않은 호젓한 등산로를 걸어올라
이르게 됩니다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먼저, [천룡사지]에서 [천룡재 갈림길]로 올라가서 위에서 말한
'줄 쳐진' 등산로를 통해 가장 빠르게 고위봉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또는,
열반재로 올라서 고위봉으로 오를 수도 있지만.. 모두 다 긴 길이 아니니 자신의
필요 및 상황에 맞춰 선택하시면 됩니다. 서로 다른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내려올 뿐입니다
- 다만, 고위봉 정상에서 천룡재로 내려오는 길을 찾으려면; 길을 잘 살펴야 합니다 ㅡㅡ;
✓
설마, 예까지 와서 바로 위 머리맡에서 [천룡사지]를 고고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으로 오르지 않고, 바로 내려갈 생각은 아니겠지요? 저는 오늘 길안내 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여기서 잠시 쉬고 있을 터이니,
잠시(잠시!) 짬내어 고위봉까지 올라보고, 또 내려오십시오..
고위봉에서 내려오는 길
고위봉에서 [열반재] 방향으로 내려온다면; [열반재 갈림길]에서
[관음사]와 [천우사]를 거쳐 용장으로 내려가거나(옆 표지판의 뒤쪽 방향),
아니면; 표지판의 앞쪽 방향으로 걸어내려, 원래의 출발점이었던 [천룡사지] 마을로 다시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이제.. [열반재 갈림길]에서 내려와 [천룡사지] 마을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구부정하게 비틀리고 뒤틀려 있는 남산의 여느 소나무들과는 달리,
이 지역의 소나무들은 하늘 향해 똑바로 쭉쭉 뻗은 시원한 모습이 몹시 인상적입니다!
봄철에 오르면; 엄청 큰 벚나무들과 화려한 벚꽃들로 가득찬 곳입니다. 어쨌건,
힘겹게 돌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고위봉에도 한번 올라보고,
다시 [천룡사지] 마을로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열반재 갈림길]에서 내려와 만나는 첫 갈림길에서 좌측은 [천룡사지] 마을인데..
우측에 난 임도로 신속히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출발선이었던 [와룡사 저수지] 바로 밑으로 내려가는, 차도 다닐 수 있는 1차선 임도인데,
쭉쭉 뻗은 소나무들을 옆으로 거느리고 걸어가는 주변 풍경 또한 아늑하고 포근합니다
- 이미 올라온 길을 다시 한번 걸어서 내려가는 것보다는..
기왕지사 나선 길, '가보지 못한 길'(고위봉에 올랐다 내려오는 중에, 어느새 계절도 봄에서 겨울로 바뀌어 풍경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을
신선하게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 게다가, 더 짧은 길입니다!
░
천룡사지-고위봉 주변풍경
봉화대능선 오르기
░[동남산 공원지킴터]에서 등반을 시작하면; [국사곡] 및 [지암곡]으로 들어가는 길을 지나쳐서 중도에
으로 올라탈 수 있는 갈림길과도 만나고, 여기서 똑바로 계속 오른다면; 금오봉 정상입니다
봉화대 능선으로
[봉화대 능선]은 [동남산 공원지킴터]에서 올라오는(혹은, [금오봉]에서 내려오는)
[동남산 순환도로]와의 삼거리 갈림길에서 오르기 시작하여,
서남산의 용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이영재 갈림길]을 거쳐서, 도중에 동남산의 [오산골]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도 만나고('들어가지 마시오' 줄은 쳐져 있습니다만 ^^),
이어서 칠불암으로 내려가는 갈림길, 고위봉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을 거치면서,
봉화대에 올라서부터 [침식곡](과 [양조암골], [열암곡]) 탐방 지역으로 내려가는 갈림길,
[바람재 능선], [오가리 폭포]로 내려가는 갈림길과도 만나면서..
남산의 최남단 [새갓골]까지 이르는, 남산의 남쪽 절반을 아우르는 긴 능선입니다
가장 먼저 만나는 [이영재 갈림길](여기서 용장으로 내려갈 수 있음)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힘겹게 밟아올라 평탄한 길로 접어들면; 잠시 후, 이 지점에 도달합니다.
바로, [오산골]에서 올라와 [봉화대 능선]과 만나는 곳입니다.
이 곳이 [봉화대 능선] 길에서 찍어본, [오산골]에서 올라온 끝 지점입니다
- 당연히 여기서 '넘어가지 마시오' 줄을 넘어서면 밑으로 내려갈 수 있겠지요? 머, 내려가거나 말거나..
오산곡 등산로
[동남산 공원지킴터]에서 [동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오르다 화장실을 지나고 한참 더 올라가다,
우측 편 [지암곡]으로 올라가는 갈림길(다리를 건너기 직전, 표지판 있음)에서 도로 건너편 좌측
앞 낮은 능선을 바라보면; 능선 중간 쯤에 우뚝허니 서있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보입니다(수풀이 우거진 봄, 여름에는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보이나요?).
바로 오산곡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입니다
[지암곡] 입구 다리에서 다시 되돌아, 한 50여미터 정도 [순환도로]를 걸어 내려가면;
(국사곡 [개선사지]로 올라가는 골짜기 직전 부근에서)내 건너편으로 올라가는 길이 희미하게 보입니다만,
올라가는 길 진입로는 정확히 명시하기 어려우니..
대충, 저 마애불 부처가 새겨진 바위를 이정표로 삼아,
어림짐작 좌충우돌 찾아가 보십시오 - 머, 바로 눈 앞이니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 ㅡㅡ;
제대로 찾아 올라가서 마애불 부처님을 만났다면; 이후에는, 능선을 타고올라
바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오산곡 마애불 할배 부처님을 뵌 뒤, 능선으로 올라 계속 등산로를 따라 위로 오르다 보면; 중도에
(쬐끔은 무식하게, [칠불암 가는길]의 [승소골] 입구에서부터 어렵게 길 찾아 헤메면서 신라시절 절터의 흔적인 돌 석축 계단들을 수없이 밟고서)헉헉대며
올라오고 있던 옛 친구와 반갑게 만나게 되고, 함께 손잡고 힘차게 잠시 더 오르면;
저 [봉화대 능선] 시작 지점에서부터 헉헉대며 올라오고 있던 자기 자신과도 다시 조우하게 됩니다.
웬, 데자뷰?
혹은, [봉화대 능선]의 빙의?
다시, 봉화대능선으로
░
[오산골] 및 [승소골]에서 힘겹게 올라온 친구들과도 정겹게 조우했으니, 다시
봉화대 능선을 따라 계속 걸어보기로 합니다
다시 봉화대 능선을 걸어
이제부터는 깊디깊은 [용장계곡]과 [은적골], 무시무시한 [쌍봉 능선]과 [이무기 능선],
고위봉과 열반재를 내려다보면서.. 또 금오봉과 용장사지 삼층석탑,
삼화령 연화대좌를 뒷 배경으로 삼고서..
온갖 기암괴석 바위님들을 좌우로 호위병 삼아 [봉화대]를 거쳐 [새갓골]까지 꽤 길게 걸어가야 합니다..
아, 좌청룡을 까먹었군요 ㅡㅡ; 머, 서운하다니..
좌측으로는 칠불암으로 오르는 기나긴 깊은 계곡과 시원한 [바람재 능선],
지금 걸어가는 능선의 끝 부분인 [봉화대] 밑 거대한 천길 낭떠러지 절벽도 두루두루 관망하면서
나아가는, 꽤 길게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지금부터 [봉화대 능선]의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후현무
을 동서남북으로 전망하면서, 또한 거대한 호위무사들을 좌우로 거느리며 길게 걸어가야만 하는
고난의 행군입니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험난하지는 않습니다 ^^)
거대한 바위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한참 걸어가다.. 어느 순간 급격한 내리막 길을 만나고,
발걸음 가벼이 내려가면; 우측 편에 산정호수로 내려가는 작은 오솔길이 나옵니다(안내 표지판 있음).
갈림길로 내려가다 그 중간 쯤에서 좌측편으로 잠시 들어가면;
도 자리잡고 있으니 한번 들러보시고..
1.
잠시만 더 내려가면; 고위봉 바로 밑에 위치한 산정호수와 만나게 되고..
잠시 쉰 뒤, 다시 [봉화대 능선]으로 오르기로 합니다. 여기서는 다시 되돌아갈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산정호수에서 곧바로 [백운재 갈림길]로
올라 다시 [봉화대 능선] 길로 합류하는 것이 더 편하고 빠른 길입니다
- 나아가, 그리 멀지 않으니 [백운재 갈림길]에서 잠시 고위봉으로 올랐다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 [백운재 갈림길]에서는 바로 밑으로는 산정호수가 펼쳐져 있고, 똑바로 올라가면 고위봉 정상으로 오르게 되는데..
이건 비밀이지만, 슬며시 곁눈질로 좌측에 보이는 '들어가지 마시오' 줄쳐진 곳을 넘으면;
그야말로 아늑하고 호젓한 오솔길이 이어지고, 고위봉 밑에 자리잡은 [백운암]에 이릅니다.
대략, 백운암 스님들만의 숨겨진 산책로이자, 힘겹게 고위봉으로 오르지 않고도
(필요시)[천룡사지]로 바로 갈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2.산정호수에서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갔다면; 이제 잠시 힘든 계단 길을 박차고 올라야합니다.
잠시만 힘들여 계단길을 오르면; [칠불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게 됩니다.
도시락 까먹으면서 전망하기 딱 좋은 곳이니,
여기서 잠시 쉬시면서 눈 앞으로 장대하게 펼쳐져 있는 [바람재 능선]도 감상하시고,
(잠시 후 걸어가야만 하는)[봉화대] 길 아래 무시무시한 천길 낭떠러지 절벽도
미리 살펴보면서, 등산화 끈 단단히 묶고 각오를 단단히 하시길 권합니다 ^^
이제 드디어 진짜로 봉화대를 만나고([봉화곡 봉수대] 표지판 뒤가 봉화를 올리던 곳인데, 잠시 들어가 살펴보셔도 됩니다)..
그동안 힘겹게 올라오면서 간간이 바라다보던, 저 무시무시한 절벽 옆 길로 잠시만
더 나아가면(조심하십시오 - 폭 1, 2미터 정도의 좁은 길입니다! 겁나면; 우측편 큰 바위로 올라타고 지나가도 됩니다 - 이쪽 전망도 꽤 좋습니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또 다른 갈림길이 나옵니다. 아무런 안내판도 없고,
길이 뚜렷하게 보이지도 않으니 스스로 찾아내야만 합니다 ㅡㅡ;
그래도 위안이 되는건, 이 갈림길 부근이 [봉화대 능선]의 가장 높은 지점이라는 힌트입니다 ^^
✓
위에서 말한 갈림길을 찾아내면; 이제 [침식곡] 및 [양조암골] 탐방로로 내려갈 수도 있고,
또는 (못 찾았으면)그냥 앞으로 나아가 [바람재 능선]으로 걸어보거나,
거북의 꼬리인 [새갓골 공원지킴터]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 머, 가고자하는 목적지대로, 또는 편한대로 혹은 길찾는 능력치에 맞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
░
[봉화대 능선] 걸어가는 길에는 양쪽으로 늘어선 거대한 바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새갓골에서
░
남산의 남쪽 끝인 [새갓골 공원지킴터]에서 등반을 시작하면;
[열암곡]을 거쳐 [봉화대 능선]으로 올라타게 되고,
도중에 고위봉, 칠불암 등으로 빠지는 길, [이영재]로 내려가는 갈림길들을 거치면서
길게 걸어 동남산 방면에서 올라오는 [동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새갓골로 내려가기
그동안 [봉화대 능선]을 따라 참으로 기나긴 길 걸어왔는데..
이제 드디어 능선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랐고, 이어지는 길을 따라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잠시 후, [바람재 능선]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길도
나옵니다만(예의 그, '들어가지 마시오' 줄이 쳐져 있음), 계속 길을 따라 걸어
로 합니다
잠시 후, [별천동골] 옛 절터 유적지 및 오가리 폭포([용장골]과 [부엉골]을 제외하면;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 남산에서 유일하게 '폭포'라는 이름이 붙은 곳입니다 ^^)로
내려가는 갈림길(역시, '들어가지 마시오' 줄이 쳐져 있음)도 나옵니다만..
이곳으로 가다가는 멧돼지를 만날 지도 모르니, 그냥 [새갓골]로 내려가기로 하겠습니다 ^^
한참 내려가다 보면; [열암곡] 부처님이
출현하십니다(앞 모습만 아니라, 뒷 모습도 [보리사] 부처님과 거의 판박이입니다만, 상처 입은 부처님 얼굴을 뵈려니 많이 애처롭습니다 ㅡㅡ;)
그 옆에는 또 다른 부처님, '비운과 행운'(?)을 함께 누리신, 누워계신
부처님이 계십니다(비록, 넘어지는 '불운'을 겪었지만, 단 5cm의 '행운'의 틈에 의해 얼굴이 온전하십니다 -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는 잘 모르겠군요 ㅡㅡ;).
처음 발견한 이래 거의 20여년이 되어가지만, 똑바로 세워드리는게 참으로 어려운 작업인 모양입니다
아직도 힘겹게 누워 계십니다만(ㅡㅡ;), 우리는 계속 내려가야만 합니다. 끝까지 내려가면;
[새갓골 공원지킴터]입니다 - 버스도 없고(노곡리 버스정류장까지는 너무 멉니다 ㅡㅡ;),
처음 시작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더 멀고,, 좀 걱정이긴 합니다만..
머, 제가 억지로 같이 가자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따라오신 길이니 자신의 앞길은 스스로들 알아서 개척해 나가십시오 ㅡㅡ;
✓
위 부처님들을 뵌 뒤, [새갓골]로 얼마간 내려가다 보면; 우측 작은 개울 건너편으로 살짝 이런 곳이 보입니다(그저, 길이 이어지겠다 싶은 정도이기에 알아채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ㅡㅡ;).
표지판도 없지만.. 바로, [양조암골]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양조암골 탐방
░
이제 깊디깊은 골짜기인
로 들어가보기로 합니다(언제라도 멧돼지가 튀어나올 수 있는 깊숙한 골짜기니 조심하십시오 ^^)
양조암골 탐방로
[새갓골]로 내려오다 제대로 길을 찾아들었다면; 이런 석재 유물들 모아놓은 곳을 만나고,
(바로 옆 개울을 건너 능선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도 있지만)위로 난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좌측은
깊은 계곡이고, 우측은 오르는 내내 한줄로 길게 늘어서서 끝까지 따라오는 바위산인데..
정말로 질긴 넘들입니다 ㅡㅡ;
먼, 감시라도 하는건지? 마냥 옆에 붙어서 따라오릅니다 ㅡㅡ;
이른바, 줄바위라고 하는데.. 능선 위로 올라 바위를 타고 올라가면 시원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으니 따라오르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 저 지긋지굿한 줄바위 넘들을 호위삼아,
발 밑으로 기와 조각들을 밟으면서 호젓한 길을 걸어서 올라가다 보면 절터가 자리잡고 있었던 허물어진 축대도 만나고,
계속 길을 따라 나아가다 보면;
이렇게 건너야 하는 작은 개울(물도 안흐르는 '개울')을 만나게 되고,
위쪽으로 난 비탈길을 살짝만 오르면; [봉화대]에서 내려오는 4갈레길과 만나게 됩니다.
이제, [봉화대]에서 어렵게 길을 찾아 내려오던 옛 친구(위에서 출발했던 자신과의 '빙의'?)와
반갑게 조우하게 됩니다 ^^ [봉화대]에서 잠시 헤어졌던 저 친구는 [봉화대]를 살짝 지나서
(많이 헤메면서 ㅡㅡ;)밑으로 내려오는 길을 간신히 찾았다고
하는데(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 지도를 면밀히 보고, 주변 숲길도 잘 살펴야 합니다),
얼마간 내려오다 보니..
4갈래로 갈라지는 이곳이 나왔다고 합니다(오랜 시간 힘겹게 길을 찾아 내려오느라 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었습니다만 - 머, 그건 지 길 찾는 재주가 모자란 탓이고 ^^).
뒤쪽은 [봉화대]에서 내려온 길이고, 우측은 [침식곡] 부처님 만나러 내려가는 길, 좌측은 [양조암골]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똑바로 가면?
낮고 짧은 능선을 잠시 걸어 [새갓골 공원지킴터]에서 [백운암]으로 오르는 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1.
감격의 상봉이 이루어진 4갈래 길에서, 오른쪽은 [침식곡]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을 만나서 계속 밑으로 내려가면; [새갓골]에서 [백운암]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도로와 만나게
됩니다(당연히, 밑 도로에서 좀 더 쉽게 찾아 오를 수도 있겠지요?)
2.
4갈래 길에서 능선을 따라 똑바로 나아가면; 능선 끝 조금 전에 좌측편 아래로 탑재들을 모아둔 곳을 발견할 수
있는데(좌측 골짜기 쪽을 잘 살펴야 찾을 수 있습니다), 아직 복원하지는 못하고
그냥 여기저기 쌓여 있습니다(역시 이곳도.. 무덤이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ㅡㅡ;).
계속 내려가면; [새갓골 공원지킴터]에서 [백운암]으로 오르는 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
참고로, 저 탑재들을 들러보고 옆쪽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중간에 또 다른 상실 절터의 흔적들도 만나고,
출발했던 4갈래 길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3.
4갈래 길에서, 좌측은 당연히 [양조암골]로 내려가는
길인데(새갓골에서 내려오다 옆 길로 빠져 [양조암골]로 들어서 찾아 올라온 길)..
밑으로 내려가서 만나는 작은 개울(예의 그, 물도 없던 '개울')을 건너지 않고,
우측으로 난 작은 숲길을 걸어 내려가면; 상실 절터의 흔적들도 만나고, 세우지 못한 탑재 유물들을
쌓아둔 곳을 다시(?) 만나서 능선위로 올라 [백운암]으로 오르는 도로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
은 최치원이 상서장에서 지내며 공부하던 [고운대] 바위 바로 옆으로 내려가는 좁은 길에서부터
시작하여 옥룡암 및 보리사, 천년숲 정원, 통일전 및 서출지를 거쳐
염불사지에서 끝나는(여기서부터는 칠불암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됨),
동남산 주변 전체를 아우르며 지나가는 길입니다
불곡에서 옥룡암으로
상서장 주차장 옆 좁은 비탈길로 내려서서 잠시 가다보면 좌측으로 다리가 있고, 그 건너편에는 예전에
남산의 모든 곳을 답사하며 기록해둔(⌜겨레의 땅, 부처님의 땅⌟),
고청 윤경렬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습니다.
계속 도로를 따라 나아가면 도로가에 [불곡] 표지판(주차장, 화장실 있음)이 나옵니다
[불곡] 입구에서 호젓한 분위기의 아늑한 등산로를 따라 한 15분 정도 걸어 대나무 숲을 헤치고 올라가면;
수줍은 듯, 바위 동굴 속에 고즈넉하게 숨어계신
님이 나타나십니다
- 이 부처님의 내면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엄숙함과 간절함이 깃들어 있는 듯합니다..
여기서 잠시만 더 올라가면; 상서장 및 [도당터널] 옆 [올렛길 등산로]로부터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절터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제, [해목령 등산로]를 걸어 금오봉
방면으로 올라가든, 상서장 방면으로 내려가든 하시면 됩니다.
혹은, 다시 원래 온 곳으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제가 권한다면;
1.금오봉 방면으로 약간 더 올라 [우창터] 및 [서창터]를 지나면;
곧바로 서남산의 일성왕릉 뒤편에서 올라오는 길,
이어서 동남산의 [옥룡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데..
거기서 내려가(이 길도 참으로 호젓한, 봄철 새순 날 때 가장 멋진 짧은 등산로입니다)
[옥룡암] 마애불상군 뒤편으로
도 나쁘지 않은, 짦막한 여정일 듯합니다(옥룡암에서 불곡 입구까지는 도로로 걸어 대충 0.5Km 내외임)
2.
혹은, [해목령 등산로]를 좀 더 걸어올라 포석정에서 올라오는
[서남산 순환도로] 삼거리에서 (이 뒤편 줄쳐진 곳으로)내려가
마애불상군 뒤편으로
도 있습니다 - 아주 호젓하고 꽤나 길게 걷는, 조용한 숲속 오솔길입니다
3.
만약, 한참 더 걷고 싶으시다면; [서남산 순환도로]를 걸어 올라가다
(좀 길게 걸었으니)중도에서 만나는 쉼터에서 좀 쉬시고, 다시 걸어올라
금오정까지 가보신 뒤, 내려와서 [동남산 등산로]를 걸어 [옥룡암]으로
도 있습니다
✓
순환도로 삼거리에서 도로를 걸어 계속 나아간다면; 잠시 더 올라가다 보면,
[옥룡암]으로 내려가는([동남산 등산로]) 갈림길 표지판이 보이고,
곧바로 [금오정]으로 올라가는 갈림길도
나옵니다(이왕지사 나선 길, 아예 [금오봉]까지 올라갔다 내려와도 됩니다, 별로 멀지 않습니다 ㅡㅡ;)
░
[불곡] 할매부처님
옥룡암 마애불상군
[불곡] 입구를 지나쳐 도로를 따라 잠시만 가면 우측으로 [옥룡암]으로 가는 마을 길이 나타납니다.
똑바로 들어가는 길은 [옥룡암], 좌측 마을길로 빠지면 [보리사]로 갑니다. 참고로,
[옥룡암]을 들르고 나와서 앞쪽으로 난 좁은 골목으로 걸어서 [보리사]로 가셔도 됩니다
우측으로 난 마을길로 들어서 [옥룡암] 안으로 들어가면; 삼층석탑과 함께 거대한 바위군의 사방팔방으로 빼곡히,
온갖 형상의 부처님들이 가득 새겨진
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9층탑] 및 [7층탑]도 그려져 있습니다만..
이 조각 그림으로 인해 지금 우리가 오랑캐의 침략에 불타서 사라진 [황룡사 9층목탑]의 모습을 알게된
모양입니다 - 어쩌면 당시에는, 우리가 들어보지 못한, 또 다른 7층 목탑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군요..
✓
[옥룡암]으로 들어오던 마을길이 시작되던 바로 그 우측 나지막한 야산 위에는([월정사] 뒤편으로 돌아서 올라감)
제2 마애불상군
이 있습니다만.. 찾기 힘들고, 막상 힘들여 찾아내도 마모가 심해 거의 알아보기 힘든
그림들입니다(탁본을 떠야 겨우 알아볼까? 말까?? 하는 정도입니다 ㅡㅡ;)
░
잠시 저 거대한 바위 주위를 돌아가면서
열반에 들기위한
부처님들과 승려들의 수행 모습을 둘러보십시오
동남산 등산로
░
[옥룡암] 뒤편으로 내려오는 등산로는 위에서 이미 살펴봤지만([불곡]으로 올라 [옥룡암]으로 내려오는 길),
여기서는 반대로 [옥룡암]에서 올라가면서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합니다. 또한, [옥룡암] 앞에서 올라가는 긴
등산로도 함께 살펴봅니다
옥룡암 뒤편 등산로
[옥룡암] 마애불상군에서 곧바로 위로 난 길로 올라가다 보면; 잡고 오르라고 매놓은 밧줄이 있는 넓직한 바위를
밟고(머, 줄을 잡고 오르셔도 됩니다 ^^) 올라서면;
좌측 옆 개울길 건너편으로 보이는 작은 길 대 똑바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개울 건너편으로 살짝 길이 보인다는 정도입니다만 ㅡㅡ;
어쨌건, 우리들 인생사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우리네
의 선택지와 마주칩니다:
1.
먼저, 똑바로 오르면; [서창터], [우창터] 부근 [해목령 등산로]와 만나게 됩니다.
이후에는,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포석정에서 올라오는 [서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됩니다(여기서 우리가 출발했던 지점으로 내려오는 등산로가 있습니다).
짧지만 멋진, 참으로 조용한 산책로입니다 - 봄철 새순이 돋아날 때 특히 상쾌한 길입니다
2.
다음, 작은 개울을 건너 좌측 편으로 올라간다면; 아~주 길되, 포근한 오솔길을 한참 걸어올라,
그야말로 아늑한 숲 풍경이 옆에서 함께 걸어 오르고, 이어서 천년숲 정원에서와 같은 거대한 수목림이 펼쳐지는
장관이 꽤 길고 넓게 펼쳐지면서.. 잠시 후, 옆쪽의 [남산신성] 유적지를 스치면;
곧바로 포석정에서 올라오는 [서남산 순환도로] 삼거리로
올라섭니다(맘이 안맞아 밑에서 서로 갈라져 올라왔다 하더라도.. 여기서 다시 반갑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
동남산 등산로
[옥룡암] 앞에서 올라가는
도 있는데, 꽤 길게 걸어올라 [금오정 전망대] 옆 [서남산 순환도로]까지 이어집니다.
이 등산로는 (서남산 방면의 '횡포한' 능선들과는 달리)온화한 성품을 지닌 낮은 능선으로서,
'능선'이라기보다는 아늑한 산책로같은 등산로입니다
- 대신, 멋진 전망이니 머니 할만한 풍경은 별로 없습니다 ^^
이 동남산 등산로로 오르게 되면; 조용하고 호젓한 산길을 꽤 길게 걸어,
신라 시절 거대한 홍수가 났을 때 아랫마을 1천명 주민들이 올라와 대피했다는 전설이 있는
일천바위와 만나게 됩니다. 사진의 뒤쪽, 옆쪽으로도 길게 붙어있는 큰 바위산이긴 하지만..
솔직히 1천 까지는 좀 허풍이라고 봅니다 - 머, 한 2,3백 정도라면 믿어줄까?
그 옆에 괴상하게 달라붙은 마왕바위를 만나고.. 좀 멍청해 보이는 뒷모습이지만,
당장이라도 굴러내릴 듯해서 이 밑으로 기어가려면 겁은 좀 납니다
- 혹시 지나가는 동안 폭싹 주저앉지나 않을까 주저주저 머뭇거렸지만, 결국은
구멍 틈으로 보이는 건너편 밝은 풍경에 혹해 밑으로 기어가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
어쨌건, 숨 딱 들이쉬고, 마왕바위 밑을 기어서 반대편으로 갔습니다. 어땠나요?
눈, 코, 입에다 귀까지 다 있는 진짜 무시무시한 대머리 마왕의 얼굴입니다만..
그래도, 눈 감고 자고 있기에 좀 안심했습니다 ^^ 이제부터는, 그저 호젓한 오솔길의 분위기를
만끽하면서(낮은 능선이라.. 거센 바람과 함께 하는 시원한 능선길은 아닙니다 ^^),
앞으로 걸어 계속 나아가기만 하면 금오정 전망대 바로 밑 [서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보리사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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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암]은 들러봤고.. 바로 옆에 있는 [보리사]를 모른체 지나치면 안되겠지요? 이제, [옥룡암]을 나와
를 둘러볼 차례입니다
보리사 탐방
[옥룡암]을 나와서 마을 도로를 따라 천년숲 정원 방향으로 가다보면; 산 위쪽 방향으로 똑바로 넓직하게 뚤린
가파른 시멘트 길이 나오고, 올라가면 커다란 소나무들에 둘려쌓인 멋진 풍경 속에 자리잡고 있는
[보리사]가 큼지막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절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석굴암] 부처님을 축소해놓은 듯한 형상의
님이 앞만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계십니다
부처님의 뒤쪽 등에는 약병을 드신 [약사여래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잠시 보리사 안에서 거닐어보시고, 이제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주차장 끝에서,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따라가다 보면 희미하게 작은 숲길이 보이고,
위로 따라 오릅니다. 오르다가 이런 곳도 지나고.. 잠시 가파르게 오르면;
동녘 해뜨는 곳을 바라보고 계시는
님이 반갑게 웃어주시며 마중하십니다.
앞에 놓여진 귤은 제가 목이 말라 좀 훔쳐 먹었습니다만..
자비로우신 부처님은 도둑질하는 저를 인자하게 내려다보시면서, "그래, 많이 먹고 힘내서 다시 올라가라"
하시며 온화한 미소와 함께 올라가는 길도 친절히 알려주시더군요
바로 부처님 뒤로 넘어가고 있는 석양 빛입니다 ^^
여기서, 지는 석양이 인도하고 있는 부처님의 우측으로
돌아(실수로 부처님 좌측에 슬쩍 나있는 길로 틀면; 계곡에 빠지고, 비탈을 오르고.. 골을 건너다, 결국은 길이 끊기는 엄청난 고행길임!)
잠시 올라가면;
[옥룡암] 앞 등산로에서 시작하여 일천바위(및 마왕바위)를 거쳐
금오정 전망대 옆 [서남산 순환도로]와 만나는 긴 등산로와 합류할 수 있습니다
- 물론, [옥룡암] 방향으로 내려가셔도 됩니다
동남산 가는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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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암] 앞쪽, 뒤쪽 등산로를 다 돌아오느라 다리품도 좀 팔았고, [보리사]까지 들러보느라 힘 꽤나 쓰셨으니..
이제 천년숲 정원으로 가서 '천년'의 숲 향기를 맡으며 잠시 쉰 뒤에, 아직도 남은
을 걸어, [서출지]와 [염불사지]까지 뚜벅, 뚜벅,, 다시 걸어가기로 합니다
서출지를 거쳐서
[보리사]에서 내려와 천년숲 정원에 들러 '천년의 향기'를 머금은 숲을 거닐며 노독도 좀 푸시고,
정원을 나와 도로 옆으로 시원하게 쭉쭉 뻗은 수목들을 벗하며 나아가는 짧은 산책로가 끝나면;
[화랑교육원]이 나오는데, 이 안으로 들어가면; 안에 모셨을 부처님은 온데간데 없고, 바깥 감실만 남아 있는
이 있습니다
계속 도로를 따라 앞으로 잠시 걸어가면; 신라의 태평성대 시기였다는 헌강왕의 무덤인
이 나오는데, 이 헌강왕릉으로 올라가는 솔숲 길을 걸어 들어가면;
그 바로 밑 동생인(늦게 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딱 1년간만 왕이었답니다 ㅡㅡ;)
으로 이어지는 아주 호젓한 산책로가 나오는데.. 정강왕릉에서 솔숲 길을 걸어 다시 도로로 나오면;
곧바로, 통일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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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정강왕릉] 좌측 뒤로 돌아서 올라가면; 등산로가 하나 나옵니다만(길 찾기는 좀 어렵습니다),
별다른 재미나 특별한 유적지도 없는.. 그저 사람의 길을 침범하면서 양 옆에서 길게 뻗어난 소나무 뿌리들과
잔자갈 흙길을 밟으면서 올라가다가, 나중에 [옥룡암] 앞에서 올라오는 [동남산 등산로]와 만나는
(예전 나뭇군들의)길입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여기서 굳이 오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 저는 그저, 모든 길을 다 걸어보고자 해서 올라봤을 뿐입니다 ^^
[통일전 주차장] 바로 옆에
가 있는데, 일연의 『삼국유사』에 쥐와 까마귀, 두 돼지의 싸움, 연못에서 나온 노인이 전해준 편지 등의 이야기로 전해지는
서출지는 월성, 월지 등과 함께 경주의
멋진 야경
을 자랑하는 곳으로서, 현재까지도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풍속이 바로 이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이로부터 나라의 풍습에 해마다 정월 상해일(上亥日)·상자일(上子日)·상오일(上午日)에는 모든 일을 조심히 하고 감히 움직이지 않았다.
15일을 오기일(烏忌日, 정월대보름)로 삼아 찰밥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까지 이를 행한다.
향언(鄕言)으로 이것을 달도(怛忉)라고 하니 슬퍼하고 조심하며 모든 일을 금하고 꺼려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 연못을 서출지(書出池)라고 부른다
-『삼국유사』, 사금갑
(
)
➥ 서출지 이야기
제21대 소지왕(炤智王) 즉위 10년에 천천정(天泉亭)에 거둥하였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우는데, 쥐가 사람말로 이르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 보시오” 했다
왕이 기사에게 명하여 까마귀를 따르게 하여 남쪽의 피촌(避村)에 이르렀는데,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어 이를 한참 살피다가 홀연히 까마귀가 간 곳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길 주변을 배회하는데 이때 한 늙은이가 연못 가운데서 나와 글을 바쳤다.
겉봉의 제목에 이르기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기사가 돌아와 이것을 바치니,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느니 오히려 열어보지 않고 한 사람만 죽는 것이 낫다” 하였다.
일관(日官)이 나서서 말하기를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왕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러하다고 여겨 열어 보니 편지 가운데 “거문고 갑을 쏘라(射琴匣)”고 적혀 있었다.
왕이 궁에 들어가서 거문고 갑을 쏘았다.
그 곳에서는 내전에서 분향 수도하던 승려가 궁주(宮主)와 은밀하게 간통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형을 당했다
-『삼국유사』, 사금갑
(
)
염불사지까지
다시, [칠불암] 방향으로 (마을길, 또는 도로를 따라)좀 더 나아가면;
부처님이 항상 방석삼아 올라앉아 계시는 연꽃과 넓직한 연잎으로 가득찬 [양피못]이
나옵니다(이곳이 진짜 [서출지]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부처님이 인간들의 생로병사를 구제하고자 출가하신 것처럼,
은 더러운 저수지 못에서 자라 물을 정화시키는 이로운 식물로서
1200년 전 씨앗
이 지금도 싹을 틔우는, 참으로 대단한 부처님의 연꽃입니다 ^^
[양피못] 옆으로는
이 은은한 모습으로 서있고, 길을 따라 [칠불암] 가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면;
중도에 [동남산 공원지킴터]로 올라가는 마을 안길 작은 도로가 나오고..
그냥 스쳐서 앞으로, 잠시 더 나아가면;『삼국유사』에 '염불사의 독경소리' 이야기로 전해지는
이 나옵니다
일연의『삼국유사』에 따르면;
스님은 이곳에서 매일 새벽 도성을 향해 큰 소리로 '염불'했다는데(아마도, 신라 왕실에 대한 불만?),
그 소리가 '도성 안 360방 17만 호'까지 들렸다고 합니다
[염불사] 앞에 작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여기까지가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입니다.
길을 따라 더 걸어가면; 이제부터는 기나긴 [칠불암 가는길]입니다.
참고로, 옆 사진에서 [염불사] 뒤쪽으로 보이는 낮은 능선은 [오산골 능선]인데,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완만한 능선길을 길게 걷다보면 [봉화대 능선]과 만나게 됩니다
➥ 선율 환생 이야기
이 [염불사지] 부근 [쑥두덤골]에 묻힌 죽은 스님이 저승의 염라대왕께 불려갔다가,
사자의 심판정에서 이승에서 못 이룬 일을 완수하게 해달라는 사연에 감명받은
염라대왕의 선처에 의해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내진 [망덕사]
이 10여일 후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온
이야기도『삼국유사』에 전해집니다만..
[* 주) 선율이 저승길에서 환생하여 돌아오는 중에]어떤 여자가 앞에 울면서 절을 하며 말하기를 “나 또한 남염주의 신라 사람인데 부모가 몰래 금강사(金剛寺)의 논밭 1무(畝)를 취한 것에 연죄되어 명부에 잡혀 와서 오랫동안 괴로움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법사가 만약 옛 마을로 돌아가면 나의 부모에게 알려 빨리 그 논을 돌려주게 하십시오. 제가 세상에 있을 때 참기름을 침상 아래에 묻어 놓았고 아울러 곱게 짠 포를 침상과 요 사이에 넣어두었으니 원컨대 법사가 나의 기름을 취하여 불등을 켜고 그 포는 경폭(經幅)을 위한 밑천으로 하여 주시면 곧 황천에서 또한 은혜로워 거의 저를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입니다”
선율이 “너의 집은 어디인가” 라고 하니 “사량부 구원사(久遠寺) 서남쪽 마을입니다” 라고 하였다.
선율이 그것을 듣고 바야흐로 가서 곧 소생하였는데 이때는 선율이 죽은지 이미 10일이 지나 남산 동쪽 기슭에 장사지내었다.
무덤 속에 있으면서 3일을 외쳤는데 목동이 그것을 듣고 절에 와서 알려 주었다.
절의 중이 와서 무덤을 파내어 그를 꺼내주니 전의 일을 다 설명하였다.
또 여자의 집을 찾아가니 여자가 죽은지 15년이 지났는데 기름과 포는 그대로였다. 선율은 그 말에 따라 명복을 빌었다.
여자의 혼이 와서 말하기를 “법사의 은혜에 힘입어 저는 이미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선율환생 (* 내용 편집)
(
)
✓
대충 이 부근이라는데, 그 무덤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저도 주변 개울가와 수풀 쪽을 이리 저리 둘러봤습니다만, 결코 찾을 수 없었습니다 ^^
철와골 탐방로
░서출지에서 ([카페 서오] 옆)마을 안길로 잠시 들어가면;
대나무숲에 숨은 좁은 길이 보입니다(표지판 있음). 바로,
입구입니다. 계속 올라가면; 금오정 부근 [서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고,
잠시 순환도로를 따라 밑으로 걸어가면;
[통일전]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나오고, 다시 시작 지점으로 내려올 수 있습니다
철와골 오르기
계속 오르다보면; 중간쯤에 [국사곡 삼층석탑]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이 길로 내려가면;
[국사곡]과 [지암곡]을 한바퀴 돌아서 [동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됩니다만,
이 방면은 나중에 들러보기로 하고.. 그대로 똑바로 오르기로 합니다
한참 더 오르면; [고깔바위](큰 바위 위에 고깔 모양의 바위가 위태롭게 올라가 있음)를
지나쳐서 금오정 전망대 옆 [서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이제, [서남산 순환도로]에 올라선 뒤..
[서남산 순환도로]의 위쪽인 금오봉 방향으로 몇걸음만 나아가면;
금오정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고,
함께 손에 손잡고, 상사바위를 거쳐 금오봉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서남산 순환도로]의 아래쪽인 포석정 방향으로 몇걸음 걸어 내려가면..
잠시 후 통일전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나오고, 여기서 잠시 내려가면; [옥룡암]에서 올라오는
[동남산 등산로]와의 갈림길과 만나게 됩니다만, 그냥 똑바로 내려가기로 합니다.
중간에 샛길로 빠져 절터 유적지를 방문해보실 수도 있고, 다시 나와 한참 더 내려가면 통일전
곁을 지나 원래의 출발지로 돌아가게 됩니다
국사곡으로
░
[국사곡]과 [지바위골] 및 [지암곡] 탐방은 [동남산 공원지킴터]에서 시작하여 꽤 길게 돌아서, 다시 시작점으로 내려오는
입니다
국사곡과 지바위골
[동남산 순환도로]를 똑바로 걸어, 화장실을 거치고 [지암곡] 입구(다리)까지 올라가서 탐방을 시작하든,
혹은 동남산 공원지킴터에서 곧바로 [국사곡]으로 오르는 우측 숲길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일단, 표지판이 가리키고 있는 우측 [국사곡] 길로 오르기로 합니다..
호젓한 오솔길을, 이런저런 유물들도 감상하며 한참 걸어 오르다 보면; 제일 먼저 [국사곡]
으로 오르는 갈림길과 만납니다.
잠깐 올라가서 인증 사진 한장만 급히 찍고(삼층석탑을 지나 잠시만 더 오르면; 서출지에서 올라오는 [철와골 등산로]와 만납니다),
다시 내려와 그냥 똑바로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로 합니다..
호젓한 숲길로 굽이굽이 오르다 보면; [국사곡 제5사지]인 굴바위와
이 굴바위를 차지하고 정성을 들여오던 무속인들이 아슬아슬하게 쌓아놓은 돌탑과 만나게 됩니다
- 참으로 대단한 정성입니다 ^^
굴바위 뒤로도 상실 절터 유적지가 있다는데, 전 올라가서 찾아보다 길도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포기했습니다
- 머, 산에서는 정 안되면 일찍 포기하는게 상책입니다 ㅡㅡ;
이 곳을 지나 오르는 길은 땀 꽤나 흘려야 하는 오르막입니다. 어쨌건, 힘겹게 '고지가 바로 저긴데' 하면서 오르다 보면;
구운 계란 까먹기 딱 좋은 평평한 곳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지껏 꽤 힘겹게 올랐으니,
일단은 구운 계란에다 두유 한 팩 드시면서 잠시 숨 좀 고르십시오..
휴식이 끝났으면; 지도와 위 안내 표지판을 참조하면서 행로를 결정해야 합니다만, 오늘은 [국사곡]을 거쳐
[지바위골]로 내려가기로 미리 예정되었으니 그냥 표지판에서 가르키는 대로 좌측 밑 길로 따라 오십시오.. 잠시만 내려 걸으면;
거대한 암벽 바위, 바로 [지바위] 아래 새겨진 (조선 후기, 혹은 일제 시대의?)근세불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저 거대한 [지바위] 옆으로 해서 위쪽으로 올라가보면; 전체가 거대한 돌바위 산입니다.
시원하기는 하지만, 특별한 사연은 없는 곳이니 그냥 밑으로 내려가기로 합니다
잡담은 끝내고, 이제 다시 내려갑니다. 순서상, 이번엔 [지암곡]
을 만나볼 차례군요. 이 삼층석탑을 보고, 내려가는 길로 들어서자마자 옆 개울 건너 살짝 길 흔적이 보입니다.
바로 [지암곡 제1사지]로 가는 길입니다만..
막상 찾아가 보면; 절터 유물들만 가득 쌓아놓고 있습니다. 그 주변 동서남북 거대한 반경이 다 절터의 흔적입니다.
내려가는 상당 거리 내내 이런 석축들을 옆으로 보면서 가야 하니.. 아마도, 예전에 엄청나게 큰 사찰이 있었던 곳이겠지요?
이제 한참 내려가야 합니다..
옆으로 [지암곡 제1사지] 석축들을 벗삼아 마냥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길안내 표지판이 하나 나타납니다
바로 [지암곡]
으로 오르는 갈림길입니다. 기왕 나선 길인데, 올라야겠지요? 멀지는 않지만, 잠시 빡세게 오르면; 삼층석탑이 나타납니다
- 그다지 넓지도 않은 골짜기에 탑이 참 많군요 ^^
이제, 다시 내려와 잠시만 더 나아가면 [동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고,
[동남산 공원지킴터]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 머, 금오봉으로 가고 싶으시면 위로 오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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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저 제2사지 삼층석탑 옆으로 돌아서 힘겹게 길을 찾아 오르면;
거대한 농바위 옆을 스쳐서 금새 [동남산 순환도로](삼화령 조금 밑입니다)와
만나게 됩니다
░
[국사곡]과 [지암곡]을 돌아서
➥ 경흥이 문수보살을 만나다
경흥(憬興)은 성이 수씨(水氏)이고 웅천주(熊川州) 사람이다.
나이 18세에 출가하여 삼장에 통달하여 명망이 한 시대에 높았다.
문무왕이 장차 승하하려고 하여 신문왕에게 유언을 남기기를 “경흥법사는 국사가 될 만하니 짐의 명을 잊지 말아라” 라고 하였다.
신문왕이 즉위하자 국로로 책봉하고 삼랑사(三郎寺)에 살게 하였다
어느 날 경흥이 장차 왕궁에 들어가려 하여 시종이 먼저 동문 밖에서 채비하였다.
안장과 말이 매우 화려하고 신과 갓이 다 갖추어져서 행인들이 그것을 피하였다.
한 거사가 행색이 남루하고 손에 지팡이를 짚고 등에 광주리를 이고 와서
하마대(下馬臺) 위에서 쉬고 있었는데 광주리 안을 보니 마른 생선이 있었다.
시종이 그를 꾸짖어 “너는 중의 옷을 입고 있으면서 어찌 더러운 물건을 지고 있는 것이냐” 라고 하였다.
중이 말하기를 “그 살아 있는 고기를 양 넓적다리 사이에 끼고 있는 것과 삼시(三市)의 마른 생선을 등에 지는 것이 무엇이 나쁘단 말이냐” 라고 하고,
말을 마치고는 일어나 가버렸다
경흥이 바야흐로 문을 들어오다가 그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를 쫓아가게 하였다.
남산 문수사(文殊寺)의 문 밖에 이르자 광주리를 버리고 사라졌다.
지팡이는 문수상 앞에 있었고 마른 생선은 곧 소나무 껍질이었다. 사자가 와서 고하니,
경흥은 그것을 듣고 한탄하여
“대성(大聖)이 와서 내가 짐승을 타는 것을 경계하였구나” 라고 하고 죽을 때까지 다시 말을 타지 않았다
- 일찍이 ≪보현장경≫을 보니 미륵보살이 말하기를
“내가 내세(來世)에 당하여 염부제(閻浮提)에 나서 먼저 석가의 말법 제자를 구제할 것인데
오직 말을 탄 비구는 제외하여 부처를 볼 수 없게 할 것이다” 라고 하였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겠는가
-『삼국유사』, 경흥우성 (* 내용 편집)
(
)
남산부석으로
░
[국사곡]과 [지바위골] 및 [지암곡] 탐방길에서 [남산 부석]으로도 잠시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습니다.
이제, 잠시 틈내어
올라가보기로 합니다..
남산 부석으로
[국사곡 탐방로]에서 거쳤던 이 갈림길을 기억하시나요? 여기서 똑바로 위로 오르면;
남산 부석과 팔각정 전망대를 거쳐 금오봉에서 내려오는
[서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됩니다(여기서 슬쩍 빠져서 딴데로 가시는 분이 분명히 나올겁니다 ^^)
앞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는 공식 등산로는 재미는 좀 없는 곳입니다. 마냥 돌아돌아 아주 작은 돌들과 잔자갈 사암을
밟으면서 올라갈 뿐, 시원함도 멋진 전망도 없습니다. 대신, 저 '들어가지 마시오' 줄을 넘어서면;
남산 부석의 멋진 모습을 전망하면서, 거대한 바위들을 옆에 호위세운 채 뚧고
올라가는(또는, 내려오는) 시원한 전망대입니다
남산 부석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팔각정 전망대가 나옵니다. 앞쪽으로 훤히 트인 전망을 보며 잠시 쉬시기
좋은 곳입니다 - 아쉽게도, 예전에 벼락을 맞아 건물은 다 불타고 무너졌답니다 ㅡㅡ; 여기서 살짝만 더 걸어 나가면;
금오봉 바로 밑 화장실에서 내려오는 [서남산 순환도로]와 만나게 되고,
이제 금오봉으로 오르든, 포석정 방면으로 내려가시든 자신의 여정에 맞춰 선택하시면 됩니다
✓
참고로, 공식 등산로로 오르는 경우에는; 남산 부석 만나기 조금 전에 이렇게 줄쳐진 곳이 나오는데,
이 바로 밑에도 근세불이 새겨진 바위가 있습니다
- 머, 예술미는 그다지 없어 보이는, 그저 도 닦으며 생활하던 무속인이 취미로 새긴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만 ^^
░
[남산 부석]으로 오르기
개선사지 찾아가기
░
굳이, 힘들여 찾아갈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조선시대 옛 문헌에서도 언급된 곳이니(『산중일기』, 우담 정시한) 간략히 소개합니다
개선사지 찾아가기
[지암곡]에서 내려와 [동남산 순환도로]와 만난뒤, 한 몇십미터만 내려가면;
좌측편으로 [개선사지]로 찾아갈 수 있는 골짜기가
나옵니다(이 부근에서 도로 건너편 개울을 건너 오산곡 마애불을 찾아갈 수 있음)
여기서 길을 찾아가며 힘겹게 올라가다
보면(정확한 길은 제가 책임 못집니다, 가보시려면 스스로 좌충우돌 해결하십시오 - 저는 올라가면서는 못 찾고, 내려오면서 만났습니다 ㅡㅡ;),
[개선사지]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만..
엄청 찾아가기 힘들고, 이곳에 있던 부처님은 이미 [경주국립박물관]에 가 계시고,
남은 건 반쯤은 허물어진 절터의 축대 흔적뿐입니다
- 여기서 소나무 가지 사이로 멀리 오산골 마애불 부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계속 오른다면;
위에서 이미 거치면서 도시락 까먹었던, 남산 부석으로 올라가는 삼거리의 '들어가지 마시오' 동아줄을 넘어가야 합니다
- 머, 꼭 올라야만 할 이유도 없는데, 굳이 넘지 말라는 선 억지로 넘을 필요까지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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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남산 탐방을 시작하여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여지껏 계속 '들어가지 마시오'
선을 넘으라고 충동질해 왔는데..
마지막 탐방기에 이르러 비로소 처음으로 '선을 넘지말라'는 '바른생활'을 실천했습니다 ^^
아마도, 제 탐방기에 불만을 품고 모습을 드러내신 '진신석가'의 '빙의'(?)가 아닐까 반성해보면서,
길었던 남산 탐방은 여기서 마치고자 합니다..
칠불암 탐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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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고도 넓은 남산 다 돌아가다 보니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 등반을 끝내고 싶었는데..
아직도 가보지 못한 탐방로가 하나 남아 있군요 ㅡㅡ; 바로, 기나긴
입니다. 머, 할 수 있나요? 다시 신발 끈 단단히 묶고서 올라가보기로 합니다..
칠불암 오르는길
염불사지를 지나 한참 더 걸어가면; 칠불암 탐방길 입구(화장실 & 다리)가 나오고, 본격적으로
으로 오르다 보면; 좌측으로는 [바람재 능선]이 길게 뻗어 있고, 그 끝은 [봉화대 능선]으로 이어집니다.
우측은 [승소골], [천동골], [흠태골] 등의 깊숙한 골짜기와 능선들이 빼곡하게 자리잡은 천혜의 깊디깊은 숲입니다
한 2Km 정도 숨가쁘게 걸어올라..
마지막으로 이 대나무숲에 둘러쌓인 돌계단을 가볍게(?) 밟으면서 칠불암에 이르니,
일곱 부처님들이 반갑게 맞이해주시는군요 ^^
[칠불암] 뒤로 보이는 좌측 암벽산은 남산의 능선 중 가장 높고 긴 능선인 [봉화대 능선]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천길 낭떠러지 절벽입니다(어쨌건, 잠시 후에는 저곳도 걸어올라야 합니다 ㅡㅡ;).
다시, [칠불암]을 돌아 힘겨운 바위길과 계단을 가파르게 기어올라..
[칠불암] 부처님들 머리맡에 자리잡은 거대한 암벽산의 맨 위에는 [신선암]
께서 홀로 고고하게 연꽃 위에 올라앉아 토함산에서 떠오르는 동녘 해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 여기서 아래쪽 세상을 바라보면; 이곳이야말로 천상의 이상세계라는
이 아닐까 싶은 장대한 풍경입니다..
다시, 신선암 할배부처님이 앉아계신 천상의 이상세계, '도솔천'과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몇걸음 더 오르면; 앞쪽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바람재 능선]을 전망하면서
도시락 까먹기 딱 좋은 자리가 나옵니다
잠시 앉아 쉬면서 예까지 힘겹게 걸어 올라온 깊은 계곡과 눈 앞으로 장대하게 펼쳐져 있는
[바람재 능선], 저 아래 민초들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들도 정겹게 감상하시고..
그 전에, 신선암으로 오르던 중에 곁눈질로만 살펴본(오르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ㅡㅡ;)
[봉화대 능선]의 최고봉도 잠시 감상하시고
- 머, 천길 낭떠러지입니다만.. 우리 여정상, 잠시 후 저 천길 낭떠러지 옆 1~2m 폭의 좁은 길을 걸어서 나아가야 합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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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좀 쉬면서, [칠불암]과 [신선암] 부처님들을 한번 더 회상해보기로 합니다..
승소곡으로 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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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으로 올라가는 입구(화장실, 다리) 조금 전에 있는,
[승소곡] 안내 표지판 뒤로 찾아 들어가
오를 수도 있습니다만, 길 찾아가기가 간단치는 않습니다 ㅡㅡ;
승소곡으로 오르기
칠불암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시작 지점에 화장실이 있는데, 그 직전에
안내 표지판이 있고, '들어가지 마시오' 줄이 쳐져 있습니다. 줄을 넘어가 어렵게, 어렵게,, 냇가와 희미한 오솔길들을
왔다갔다 하며 진짜 어렵사리 모험하면서 [승소곡] 탑지 자리를 찾아갈 수는 있지만..
이 자리에 있던 탑은 이미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지 오래입니다
- 박물관 대문 넘어서자마자 바로 옆 작은 동산 위에 고고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만약, 무사히 [승소곡] 절터 유적지를 찾아서 계속 위로 올라갔다고 가정한다면(?);
[염불사지] 뒤쪽 [오산곡 능선]으로 해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데,
그 전까지는 산 전체가 전후좌우 모두 다 돌 석축들입니다
- 그야말로 산 전체를 아우르는 엄청나게 거대한 사찰이 있었던 듯합니다.
계속해서 끝까지 올라가면; [봉화대 능선]과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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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봉화대 능선]에서 [이영재] 갈림길을 거쳐서 용장이나
[동남산 순환도로]로 나갈 수도 있고,
또는 반대로 봉화대 및 고위봉 방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중도에 [칠불암]으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옆 사진은 줄을 넘어와 [봉화대 능선]에 올라선 뒤, 돌아서서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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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곡] 올라가는 능선의 발 밑은 오르는 내내 산 전체가 전후좌우 모두 다 돌 석축들입니다
- 이곳에 엄청 거대한 절이 있었다는 얘기겠지요?
천동탑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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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골]은 워낙에 골도 깊고, 이리 저리 작은 개울들도 많고 해서 찾아 들어가기 꽤나 어려운 곳입니다만,
그래도 애써 한번 찾아가보기로 합니다..
천동탑 찾아가기
칠불암 올라가는 다리를 건너서 위로 올라가다 작은 연못마냥 꽤 많은 물이 고여 있는 개울이 나오는데,
물놀이도 해볼만한 큼지막한 곳이지만, 등산객들이 다니는 길이니 그냥 개울가에서 땀만 좀 씻어내시고..
개울을 건너 잠시 오르다 보면;
[천동탑] 사진도 있는 이 표지판 뒤로 묘지를 파낸 뒤 다듬은 평지가 보이는데, 이 부근에서 오른쪽 뒤로 희미한
길이 보입니다 - 바로 천동탑을 찾아 오르는 [천동골] 깊은 계곡의 시작입니다.
좀 더 걸어가다 나오는 [천동골] 계곡 개울을 넘어서 힘겹게 길을 찾아 헤매며 올라가야 하는데..
[천동골] 계곡을 두어번 정도 왔다갔다 건너면서 어렵사리(ㅡㅡ;), 제대로 길을 찾아들었다면(?);
깊숙한 계곡을 따라 호젓한 길을 한참 더 올라가다 보면 [절터] 유적지도 나오고, 드디어 그 깊숙이 숨어있던
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천동탑은 아래서 길 찾아 올라가다(첫번째 모험은 실패로 끝났었고),
(세번째 탐험에서 ㅡㅡ;)또 다시 옆 능선으로 잘못 올라가는 바람에 천동탑 옆 능선에 자리잡고 있던
[디딜 방아터]를 발견하고, 내려오다 찾아낸 것입니다
- 머, '모든 필연은 우연을 통해 관철된다'고 하니, 길 잘 못찾는다고 욕하지는 마십시오 ^^
천개(? 세어보진 않았지만, 천개는 아님 ^^)의 구멍을 뚫어놓은 천동탑이 하나는 서 있고,
하나는 눕혀져 있는데 바로 옆 개울(내려오다 뱀 만남!)을 건너가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이리저리 찾아보면; 사찰에서 사용했던 [디딜 방아터] 유물도 있습니다
천동탑에서 능선을 따라 계속 오르면 [봉화대 능선] 아래까지는 올라갈 수 있는데.. 그 위는 절벽이라 더 이상은
오를 수 없으니 이미 시도하셨더라도, 그만 포기하고 다시 내려오십시오(너무 많이 올라갔다면; 옆 승소골 계곡을 건너, 승소곡 능선 위로 오르는 엄청난 모험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만.. 기나긴 고생 끝에 승소곡 능선으로 오르면서 발견한건 멧돼지 똥 뿐입니다 ^^).
대신, 위안삼아 [봉화대 능선] 절벽에서 뛰어내려 오면서 감격적으로 만난 천동탑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천동탑은 처음에 밑에서 올라가다 길을 못찾아 실패하고..
다음엔 [승소곡] 능선을 오르다 [승소골] 골짜기로 내려가 건너고, [천동곡] 능선을 넘어서,,
[천동골] 계곡으로 내려가면서도 찾지 못했는데..
나중에 [봉화대 능선]을 지나다 지도를 보면서 언뜻, 대충 어림짐작
'여기가 [천동골] 옆 능선일거다' 추측하고 80도 절벽급 비탈을 뛰어내려 능선길을 타고 걸어 내려오다
발견했고(감격적인 첫 만남이었습니다 ^^),
천동탑 옆 [디딜 방아터] 유적지는 (3번째 탐험에서 ㅡㅡ;)밑에서 찾아
올라오다 길을 잃고 마냥 옆쪽으로 들어가서 능선을 오르다 발견한 행운의 선물이었는데,
다시 방향을 약간 틀어 옆 비탈길로 돌아서 내려오다 보니 멀찌감~치 저넘이 보이더군요 ^^
[승소곡]이나 [천동골] 모두 멧돼지도 나오고, 뱀도 있고 벌도 많은 깊은 계곡입니다. [승소곡]에서는
벌에 한 10여방 쏘이고 황급히 도망치던 중, 부근에 있던 시꺼먼 멧돼지넘이 저보다 더 놀라 으엉~ 하며
급하게 달아나는 바람에 사진도 못찍었습니다 ^^ 하지만, 어느 쪽에서 왔건간에 이 길을
찾았다면(개울 건너 좌측 길은 천동골 들어서는 입구에서 찾아 오르는 길이고, 개울을 건너서 올라온 이 길은 [승소곡] 옆 골짜기를 한참 걸어내려 칠불암 오르는 길과 만나는 길입니다);
그저 앞에 나 있는 호젓하고 시원한 길을 따라 꽤 길게 걸어오르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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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남산에서는 안내 표지판이나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막아놓은 '동아줄'은 다 의미가 있습니다:
안내 표지판은 그 부근에 유물이나 유적지 등 뭔가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의미이고,
막아놓은 동아줄은 원래 사람들이 다니던 등산로였지만, 지금은 자연보호를
위해(솔직히는, 국립공원공단의 관리 업무를 줄이기 위하여?) 얼마간의 안식년에
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도 남산의 유물 유적들을 찾아나선 사람들이라면,
저 가는 동아줄이 두려워서 포기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 그래서? 이 깊숙한 곳에 비밀스럽게 자리잡고 있던 천동탑도 결국에는 찾아냈습니다 ^^
바람재 능선 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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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산의 능선 중 유일하게 걸어보지 못한, 남산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천혜의 비경인
으로 내려가(올라와)보기로 합니다..
바람재 능선으로
칠불암 오르는 길의 시작인 화장실 있는 입구 다리를 건너 칠불암으로 올라가다 보면;
잠시 후 좌측으로 '들어가지 마시오' 줄쳐놓은 곳에서 희미하게 길의 흔적이
보입니다(첫번째 만나는 개울가 연못 조금 전).
그 길로 오르기 시작하면; 남산에서 가장 시원한 능선인 [바람재 능선] 에 올라타신 겁니다 ^^
하지만, [바람재 능선]은 밑에서 올라가는 것보다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양쪽으로 훤하게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하면서, 또 시원한 바람과 벗하며 내려올 수 있기에.. 저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길을 좋아합니다
능선길은 애초에 올라가는 입구를 찾기에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시작점만 있으면)내려오는 경우에는;
좌우 및 아래쪽이 훤히 보이기에 대개는 그저 능선 제일 높은 곳을 걸어 아래쪽으로 내려오기만 하면 됩니다.
머,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로 능선의 맨 위쪽을 지향하며 걸으시면 됩니다.
"우리는 음지를 지양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 예전 안기부 아덜 말씀 ^^
정 길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그저 아래쪽 골짜기로 내려가 물길을 따라 내려가시면 됩니다
- 물은 항상 밑으로,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흐릅니다.
머, 깊은 계곡 골짜기에서는; 우연찮게 멧돼지와 만나는 행운(?)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그치만, 우리 인생사와 마찬가지로.. 간혹은 꽃길을 외면하고, 힘겹게 가시밭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까짓거,
이판 사판,, 한번 힘들여 올라가보기로 하지요 ㅡㅡ;
아늑한 숲속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는(또는, 내려오는) 포근한 서남산의 [황금대 능선]과는 달리,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 암벽들 틈을 헤집으면서 또 타넘으면서 멋진 전망과 함께 올라가는 것은 또 다른 풍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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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힘들더라도 [바람재 능선]으로 한번 올라보기로 합니다
- 이곳 또한 맨 먼저 절터의 흔적인 축대가 밟히는군요 ^^
남산의 뒤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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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껏 유일하게 탐방로 소개를 못한 곳이자, 걸어보지 못한 길이 남산의 뒤안길인 [오가리 폭포] 방면에서
입니다..
오가리 폭포 올렛길
[봉화대 능선]에서 [새갓골 주차장] 방면으로 내려가던 중..
중간에 옆으로 빠져 [오가리폭포] 쪽으로 내려가보려 하다가 해가 저물어가는 늦은
시간대라(멧돼지도 나타날만한 깊은 계곡이라 좀 겁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시 걸어서 자전거 세워둔 [새갓골 주차장]까지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도 먼 길이기에 ㅡㅡ;)
중도에 포기한 길입니다 - 이 탐방로 소개는 언젠가 한번 다녀온 뒤 추가하겠습니다
여기서도 남산의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괴상하게 생긴 바위들이 옆에서 호위하고 있군요 ^^
잠시만 내려가다 결국 시간상 어려울 것 같아 능선 옆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 [열암곡 마애불] 머리 위로 내려왔습니다.
[오가리폭포]에서 이 등산로로 오르면; 중간에
로 가볼 수도 있고, 고서에 나오는 진짜 [비파바위]가 있다고도 합니다(딴 분의 탐방기를 보니 진짜 거대한 비파바위가 찍혀 있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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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곡리 버스 종점을 좀 지난 뒤, 갈랫길에서 [새갓골 공원지킴터] 방향이 아닌 이 [오가리폭포] 방면으로 걷는 길은
남산의 숨겨진 뒤안길로 돌아가는, 그야말로 신선이 걸을만한 올렛길입니다(저는 전기자전거로 두어번 돌았습니다만, 승용차로도 돌아갈 수 있습니다 - 다만, 차는 좀 싫어할겁니다 ^^).
길을 따라 계속 돌면; [사리마을]이 나오는데.. 거기서 잠시 앞 농로 도로를 거치면 경주나 불국사로 연결되는 국도와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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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새갓골]과 [오가리폭포] 갈림길 지점에서 [금천사] 방향으로 가게되면;
마석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입니다. 찾아가는 길이 좀 어렵지만,
여기에도 역시 절터의 흔적과 예의 그 [삼층석탑]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우측으로 난 개울을 건너 낮은 능선길로 올라서서 한참 걸어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